20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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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눈 오는 밤에나의 이야기 2023. 2. 20. 00:01
사랑은 눈오는 밤에 사랑은 눈 오는 밤에 사랑은 겨울에 할 것이다 겨울에도 눈 오는 밤에. 눈 오는 밤이어든 모름지기 사랑하는 이와 노변 하롯가에 속삭이는 행복된 시간을 가지라. 어떤 이는 사랑이 나란히 걷는 중에서 생장한다고 말하여 혹시 봄 밤의 꽃동산을 기리고 혹시 가을날의 단풍길을 좋다 하지마는, 나는 단연코 설야의 노변을 주장하는 자이다. 왜 그러냐 하면 시간을 초월한다 하더라도, 겨울밤의 기나긴 것은 어느 편이냐 하면 둘의 마음을 든든케 할 것이요, 더구나 노변의 그윽한 정조와 조용한 기분이며 설야에 다른 내방자가 없으리라는 자신의 서로의 마음을 가라앉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선과 같이 침착하고, 태연하고, 유유해야 할 것이다. - 양주동의 중 서두 부분 ***** ※ "사랑은 겨울에 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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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미당이 아내에게 건네는 말씀 외 한편나의 이야기 2023. 2. 19. 00:01
미당이 아내에게 건네는 말씀 엄한정 미당이 보니 아내가 하루는 창문 너머를 보더니 '관악산이 웃는다.'라고 해. 참 묘한 말이야. 이백 도연명을 통틀어도 이런 표현을 못하지 당신이 시인이고 나는 대서쟁이야. 당대 최고의 시인인 남편으로부터 시의 스승이란 말을 듣기도 한 방옥숙 여사 면 년 전 귀가 어두워진 뒤부터 이층 서재에서 아내를 부를 때는 스위스 목동들이 부는 뿔피리를 불었다. 방 여사가 그걸 알아듣고 미당을 찾는 것이다. 그 아내가 고향 고창 선산으로 떠나는 날 기진한 미당은 방에 누워 '이제 하늘도 편안하다는 천안을 지나고 있겠지. 불쌍한 사람 지금 묻히고 있네.' 눈에 훤히 보이듯 말하며 입으로는 웃으면서도 눈물을 글성였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아호 동화의 시절 엄한정 나즈막한 순한 동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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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내복 수필을 읽고나의 이야기 2023. 2. 18. 00:01
빨간 내복 구명숙 시인 수필을 읽고 10여 년 전에는 동리 아이들을 부모님이 일터에 나가면 도맡아 보살펴 주신 할머니 그때는 그 아이들과 인연을 맺어 찾아 가곤 했었다. 그 몇 년 후 부모들은 더 나은 일터를 찾아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갔지만 할머니와의 관계는 여전히 돈독했다. 할머니가 독거노인이 되셨다는 말을 듣고 그때 찾아간 일행 세 명이 할머니 댁을 다시 찾았다. 한 사람씩 할머니 손을 잡고 인사말을 나눈 뒤 선물을 드리고 떡으로 만든 케이크에 89세 인생길에 촛불을 밝히고 생신 축하 노래 를 힘차게 불러 드렸다. 준비해간 선물 중 빨간 내복을 자꾸 쓰다듬으시면서 보드랍고 따뜻해서 좋다고 죽을 때까지 잘 입겠다고 하셨다. 이 마을에 이제 예닐곱 노인들 몇 분만 살고 있다고 하시며 학교도 폐교가 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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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무주구천동 소묘 외 한편나의 이야기 2023. 2. 17. 00:01
※ 문학사계 2023년 봄호에 실린 조기호 시인의 신작 시 무주구천동 소묘 외 한편 무주구천동 소묘 조기호 산속에서는 산만 운다. 물속에서는 물만 울고, 산새 소리 바람소리 이제 그것들은 소리가 아니다. 울음도 아니다. 산에는 산그늘만 들어오고 물에는 물 비듬만 나분 댄다. 오늘은 내 안에서 나만 혼자 미어지게 울었다. 향적봉 나린 물이 급류로 쏟아져 부서지며 물보라를 일으키고 그것이 다시 기암절벽에 부딪히며 돌아 나와 제자리를 맴돌아 흘러내린다. 흙 한 줌 없는 바위 위에 마한 백제 큰 어르신이 꽂아놓으신 소나무 한 가지 천년송으로 시방도 서 계신다. 그 아래 물이 돌고 산이 돌고 하늘이 돌고 너와 내가 돌아 파회(巴洄)다. ******************** 생명 연장 / 조기호 아침나절 병원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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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오시는 봄나의 이야기 2023. 2. 16. 00:01
오시는 봄 / 이기라 징검다리 건너서 봄 오시기 기다린다 물오른 버들가지 호드기 꺾어 불며 저 멀리 오시나 보다 아지랑이 앞세우고. ***** 꽃이 피는 이유 / 이기라 피었다 고대 질걸 꽃이여 왜 피는가 너는 피어 아름답고 나는 살아 고달파라 꽃이여 너 피는 이유 이제 조금 알겠네. ***** 연필 / 이기라 살이 깎이고 뼈가 닳는 고행의 삶입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설원의 길 몽당이 되도록 지나온 어제가 다 경전입니다. ****** 알츠하이머 / 이기라 돈 있다고 뭘 할거며 없다 한들 또 어떤가 새 짐승 길짐승들 뒤주 없이 사는데 곳간을 채우려는 일 부질없는 욕심일레. 눈비가 주야장천 오거나 말거나 물이 흘러 거꾸로 산으로 간다 해도 그 무슨 걱정을 하리 자연의 뜻인 것을 떠 넣어 주면 먹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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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국수나의 이야기 2023. 2. 15. 00:01
국수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 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 여름 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느 하룻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러났다는 먼 옛적 큰 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재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생략)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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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를 읽고나의 이야기 2023. 2. 14. 00:01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를 읽고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 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 로 날이 날마다 칠해져 온 것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때의 손때 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 어져 이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래,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따로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에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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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흑구 수필 <보리>내용나의 이야기 2023. 2. 13. 00:01
한흑구 수필 내용 보리. 너는 차가운 땅 속에서 온 겨울을 자라왔다. 이미 한해도 저물어, 벼도 아무런 곡식도 남김 없이 다 거두어들인 뒤에 해도 짧은 늦은 가을 날, 농부는 밭을 갈고, 논을 잘 손질 하여서, 너를 차디찬 땅 속에 깊이 묻어 놓았었다. 차가움이 응결된 흙덩이들을, 호미와 고무래로 낱낱이 부숴가며, 농부는 너를 추위에 얼지 않도록 주의해서 굳고 차가운 땅 속에 깊이 묻어 놓았다. 너 보리는 그 순박하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자라나고, 또한 농부들은 너를 심고, 너를 키우고, 너를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보리, 항상 순박하고, 억세고 ,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수필 내용 일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