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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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동나의 이야기 2023. 2. 3. 00:01
해동 이삼현 네 식구였던 입이 둘로 줄어들자 먹을 것들이 남아돈다 미처 먹지 못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가래떡을 출출할 때 드시라며 꺼내놓은 아내는 일하는 게 더 편하다고 알바하러 갔다 한파경보가 내린 날 냉동되었던 떡이 먹기 좋게 말랑말랑해졌을 즈음 아파트 세대를 돌며 소독하러 왔다고 벨을 누르느라 손발이 꽁꽁 얼어붙지나 않았는지 얼었다가 녹았다가 사는 일이 꼭 커다란 냉장고에 들락날락거리는 것만 같아 겨울이면 얼었다가 여름이면 녹기를 반복한다 긴장과 해이 딱딱해졌다가 다시 말랑말랑해진다 넷이었던 식구가 둘만 남았어도 밥상을 준비하는 아내 손은 쉬 줄어들 줄 모르고 고기를 굽거나 찌개를 끓일 때마다 장가가고 없는 2인분까지 넉넉히 준비한다 함께 먹지 못해 남겨진 아쉬움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내일은 첫째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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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분꽃나의 이야기 2023. 2. 2. 00:01
분꽃 조광자 한해살이 근본도 없는 것들 자투리땅에 뿌리를 내리고 세 들어 산다 이웃이 누르는 그늘에는 발라낼 햇살이 한 줌도 없다 디딜 곳을 찾아 이리저리 흔들리는 동안 느슨해진 해가 그늘을 들치고 손짓을 한다 뼈대를 키우지 못한 여린 싹을 안고 지긋이 몸을 튼다 마디마디 누워서 어디로 가야 하나 비틀린 관절들이 집 밖으로 밀려나 문간방에서 몸을 풀었다 낮이면 입 다물어 고개 숙이고 밤이면 몰래 별들에 몸을 연다 벌 나비 찾아오지도 않았는데 한 태에서 색색으로 피어난 분꽃 까만 씨앗 여럿 품었다 오늘 밤, 별똥별 수없이 떨어지겠다 ************************************* 시집 『닿을 수 없는 슬픔에게』 2022년 문학의 전당 조광자 시인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2009년 《시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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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의 침묵은 인생도 여물게 한다나의 이야기 2023. 2. 1. 00:01
낙엽의 침묵은 인생도 여물게 한다 김길순 미국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내가 만일 상한 가슴을 건질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 내가 만일 병든 생명을 고칠 수 있다면, 또한 할딱이는 새 한 마리라도 도와서 그 보금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고 읊었는데 그녀는 어찌하여 이런 시를 쓰게 되었을까. 실연의 상처를 안고 낙엽처럼 떨어져 나온 그녀는 고독하고 정밀(靜謐)한 일생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은 아름답고, 속아 사는 사람은 아름다운 법이다. 고 말했으리라. 낙엽은 땅에 떨어질 때는 물론이고 밟힐 때도 싫지 않은 소리를 내는 낙엽 그 안쓰러운 존재는 마음이 맑은 시인에게 사랑을 받게 된다. 그러다가 세월이 가면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