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시)<범일동 블루스> 외 한편/ 손택수
    나의 이야기 2021. 7. 2. 00:02

     

    범일동 블루스 / 손택수

    1

    방문을 담벼락으로 삼고 산다. 애 패는 소리나 코고는 소리, 지지고 볶는 싸움질 소리가 기묘한 실내악을 이루며 새어나오기도 한다. 헝겊 하나로 간신히 중요한 데만 대충 가리고 있는 사람 같다. 샷시문과 샷시문을 잇대어 난 골목길. 하청의 하청을 받은 가내수공업과 들여놓지 못한 세간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간밤의 이불들이 걸어나와 이를 잡듯 눅눅한 습기를 톡, 톡, 터뜨리고 있다. 지난밤의 한숨과 근심까지를 끄집어내 까실까실하게 말려주고 있다.

    2

    간혹 구질구질한 방안을 정원으로 알고 꽃이 피면 골목길에 퍼뜩 내다놓을 줄도 안다. 삶이 막다른 골목길 아닌 적이 어디 있었던가, 자랑삼아 화분을 내다놓고 이웃사촌한 햇살과 바람을 불러오기도 한다. 입심 좋은 그 햇살과 바람, 집집마다 소문을 퍼뜨리며 돌아다니느라 시끌벅적한 꽃향, 꽃향이 내는 골목길.

    3

    코가 깨지고 뒤축이 닳을 대로 닳아서 돌아오는 신발들, 비좁은 집에 들지 못하고 밖에서 노독을 푼다. 그 신발만 세어봐도 어느 집에 누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어느 집에 자고 가는 손님이 들었고, 그 집 아들은 또 어디에서 쑥스런 잠을 청하고 있는지 빤히 알아맞힐 수 있다. 비라도 내리면 자다가도 신발을 들이느라 샷시문 여는 소리가 줄줄이 이어진다. 자다 깬 집들은 낮은 처마 아래 빗발을 치고 숨소리를 낮춘 채 부시럭부시럭거린다. 그 은근한 소리, 빗소리가 눈치껏 가려주고 간다.

    4

    마당 한 평 현관 하나 없이 맨몸으로 만든 집들. 그 집들 부끄러울까봐 유난히 좁다란 골목길. 방문을 담벼락으로 삼았으니, 여기서 벽은 누구나 쉽게 열고 닫을 수가 있다 할까. 나는 감히 말할 수가 없다. 다만 한바탕 울고 난 뒤엔 다시 힘이 솟듯, 상다리 성치 않은 밥상 위엔 뜨건 된장국이 오를 것이고, 새새끼들처럼 종알대는 아이들의 노래소리 또한 끊임없이 장단을 맞춰 흘러나올 것이다. 젖꼭지처럼 붉게 튀어나온 너의 집 초인종 벨을 누르러 가는 나의 시간도 변함없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질 것이다.

     

                      *******************************************************************************

     

    포옹

                                          손택수

     

    강아지가 몸을 말아 저를 껴안는다
    온기가 달아나지 않게.
    양쪽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고
    나도 나를 안아본다

    겨울은
    혼자서 포옹하기
    좋은 계절이다

     

    ************************

     

     

    손택수시인

    1970년대 전라남도 담양 출생

    경남대학교 국문학과, 부산대학교 국문과 대학원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으로 등단

    제3회 수주문학상 대상 2001년, 제2회 부산작가상2002년, 제9회 현대시 동인상2003년,
    제22회 신동엽창작상2004년, 제2회 육사시문학상 신인상2005년, 제3회 애지문학상,
    제14회 이수문학상2007년. 카페 시인회의에서 발췌. -작성 김길순-

     

     

     

    가족 김수연 작품

     

    공감은 아래 하트를 눌러 주세요.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슈베르트 세레나데  (0) 2021.07.06
    (詩)어머니, 나의 어머니 - 고정희  (0) 2021.07.03
    (시)아이들 세상  (0) 2021.06.26
    (시)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 마종기  (0) 2021.06.25
    (시) 쓰봉 속 십만원  (0) 2021.06.24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