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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봉 속 십만원나의 이야기 2021. 6. 24. 00:41
쓰봉 속 십만원
권대웅
"벗어놓은 쓰봉 속주머니에 십만원이 있다"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무슨 큰 비밀이라도 일러주듯이
엄마는 누나에게 말했다
속곳 깊숙이 감춰놓은 빳빳한 엄마 재산 십만원
만원은 손주들 오면 주고 싶었고
만원은 누나 반찬값 없을 때 내놓고 싶었고
나머지는 약값 모자랄 때 쓰려 했던
엄마 전 재산 십만원
그것마저 다 쓰지 못하고
침대에 사지가 묶인 채 온몸을 찡그리며
통증에 몸을 떨었다 한 달 보름
꽉 깨문 엄마의 이빨이 하나씩 부러져나갔다
우리는 손쓸 수도 없는 엄마의 고통과 불행이 아프고 슬퍼
밤늦도록 병원 근처에서
엄마의 십만원보다 더 많이 술을 마셨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고참이 된 누나가 지쳐가던
성탄절 저녁
엄마는 비로소 이 세상의 고통을 놓으셨다
평생 이 땅에서 붙잡고 있던 고생을 놓으셨다
고통도 오래되면 솜처럼 가벼워진다고
년 서울사면의 어둠 뚫고 저기 엄마가 날아간다
쓰봉 속 십만원 물고
겨울하늘 훨훨 새처럼 날아간다
출생 1962년 서울
1988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집 『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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