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시)해바라기
    나의 이야기 2022. 10. 1. 00:03

     

      해바라기  

                                                                  손진은

     

    몰랐다 하늘 아래 끝도 안 보이는 해바라기들이 피고 진다는 걸

    제 생을 피우느라 울고 웃고 찡그리고 벅찼을

    사내들 노오란 하늘 떨려나갈 때까지

    까만 씨앗 저무는 하루 건사하는 걸

     

    기도 흉내만 내며 벙긋벙긋 웃는 가녀린 줄기였다가

    제법 그 피가 차오르고

    근육이, 뼈가 단단해지는 걸

     

    누가 루마니아 평원에서 찍어보낸, 세상 눈알 다 모아놓은 둘레로

    불을 지고 흔들리는 족속 보고서야 알았다

    사내라면 누구든 수천 평 씨앗 뿌리고 먹여 살리는 멀쑥한 꽃대

     

    물 샐 틈 없는 피와 근육, 뼈 거느린

    둥근 얼굴에 검은 씨들 앉히고

    웃고 울고 찢기고 넘어지며 등 굽은 박수나 치다가

    언 발 바람 든 뼈로 구름 덜컹이는 창문 곁에 눕거나

    종소리도 없이 목 꺾인 줄기가 우수수수, 저문 언덕 넘어가는 것을

     

    해바라기들, 구직란 보느라 핸드폰 액정에 빠져 사는

    일 하나 받을까, 온종일 이 사람 저 사람 찾아 연명하는

    앞도 옆도 뒤도 빽빽히 굵은 소금 같은 소낙비 맞고 있는

     

    그러고 보니 나도 해바라기 힘줄의 물샐 틈 없는 소년을

    격렬한 각오의, 떨어진 단추 뒹구는 모래 언덕의 청년을

    일터 전전하는 수 천 평 그 밭의 아비를 느리게 건너

    환한 겉과 쪼그라진 심장 매단 초로가 되었다

     

     ***********************************************

    『현대시학』, 2022. 9-10월호]

     

     
    손진은 시인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199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저 눈들을 밤의 창이라 부른다』외 3권. 저서 『시창작교육론』외 8권.
    금복문화상, 시와경계문학상, 대구시인협회상 외 수상.
    -작성자 김길순-

     

     

    다음 이미지 발췌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문학비전 2023  (65) 2022.10.04
    10월의 연서  (69) 2022.10.03
    가을 별밤에 외로운 노랫말을  (71) 2022.09.30
    9월의 해변은 여인처럼  (72) 2022.09.29
    (시) 벼  (71) 2022.09.28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