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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 애인이지요나의 이야기 2022. 10. 15. 00:03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 애인이지요
박정대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 애인이지요
나의 가슴에 성호를 긋던 바람도
스치고 지나가면 그뿐
하늘의 구름을 나의 애인이라 부를 순 없어요
맥주를 마시며 고백한 사랑은
텅 빈 맥주잔 속에 갇혀 뒹굴고
깃발 속에 써놓은 사랑은
펄럭이는 깃발 속에서만 유효할 뿐이지요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 애인이지요
복잡한 거리가 행인을 비우듯
그대는 내 가슴의 한복판을
스치고 지나간 무례한 길손이었을 뿐
기억의 통로에 버려진 이름들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요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 애인이지요
맥주를 마시고 잔디밭을 더럽히며
빨리 혹은 좀더 늦게 떠나갈 뿐이지요
이 세상에 영원한 애인이란 없어요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 애인이지요*****************************************************
음악들
박정대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
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
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 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결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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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대 시인 약력>>
*1965년 강원도 정선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단편들』『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아무르 기타』『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삶이라는 직업』
『모든 가능성의 거리』『체 게바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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