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화壓花
마경덕
매몰된 가을이 발견되었다
책을 끼고 그곳을 지나갔을 때
유난히 뺨이 붉은 꽃이 틈으로 뛰어들고
45쪽과 46쪽은 닫혔다
붉은 물을 토하며
서서히 종이처럼 얇아지는 동안
책은 책 밑에서 피를 말리고
계절이 계절을 덮치듯이
시간의 두께와 어둠에 기억은 갇혀 있었다
방치된 것들은 대부분 변형을 일으킨다
책갈피 사이
책의 생각과 엉겨있는 꽃의 얼굴
꽃들이 선호하는 죽음은 태어난 자리에서 치르는 풍장이다
압사壓死를 두려워하는 꽃들
한 권의 책으로도
죽일 수 있는 게 많다
**************************마경덕 시집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2022. 상상인
-작성자 김길순-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향말 (사투리) (76) 2022.11.10 루소와 연인이었던 바랑 부인 (73) 2022.11.09 <나도 가져가야지> 산문을 읽고 (84) 2022.11.07 한올 문학에 실린 시와 그리고 한편 더 올립니다. (62) 2022.11.06 백석의 (석양) (75) 2022.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