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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불놀이
박종현
겨울 들녘에서
묵시록 읽고 있는 바람소리 들린다
책갈피마다 서성이는 빈 그루터기
소유를 벗어버린 계절이
맑은 햇살에 몸 씻고 다시 드러눕는다
샛별 같은 깨달음에 눈뜰 때까지
허기로 저무는 들판 내달으며
쥐불을 놓던 내 심심한 유년이
흙바람 속으로 자물려 와 눈을 감는다
불티가 난다
낯익어 외롭잖은 허공으로
꿈의 질량만큼 가볍게 날아오르는 불티.
아이들은 청보리 발목을 붙든 추위 녹을 때까지
떼고함으로 동맥을 덮히며 봄을 건진다
지순한 눈빛 하늘을 담고
불 꺼져가는 하늘 곁에서 나이를 먹었지-생략-
천 년을 발돋움해 온 들녘의 가슴팍
설익은 삶을 가둬놓은 시멘트집들만 널린 채
겨울 묵시록 시퍼런 목청이 전깃불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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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고유한 전통적인 소재를
의식 내부로 내면화시켜서 그것을 다시금 개성적인 작품으로 형상화하여
펼쳐 보여주고 있다. 결말 부분에서 '설익은 삶'을 청산하고 전깃불을 켜듯
희망을 갖고자 하는 데 그 원시적 생명감이 살아나는 공간이 바로
'들녘의 가슴팍'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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