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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행성에서 외 1편
    나의 이야기 2023. 3. 7. 00:01

     

     

    행성에서 

                                        김춘리

     

    비둘기가 앉는 순간
    창문이라는 거주가 시작되었다

    배워본 적 없는 오토바이는

    퀵서비스의 속도로 멀어지는 행성이어서

    가스와 먼지로 둘러싸이고

    포장된 우리는 흔들리고

    황급히 달리며 인사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기상관측소에서 파도가 밀려온다는

    경고문을 행성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주꾸미 먹물같이 관측이 불가능했던 일상들

     

    비탈은 취향의 문제이므로

    풍경을 자르면 취향이 사라졌다

    옥탑방은 구글지도에 없는 풍경이어서

    굴러 떨어진 적이 있다

     

    방지 턱을 보지 못해

    굴러 떨어진 뼈를 주우며

     

    우리는 이동하는 행성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스키드 마크가 희미해지기 전에

    전파망원경 밖으로 멀어지기 전에

    행성이라는 포장에서 나를 꺼내야 했다

     

                     ******

     

    기념일  / 김춘리

    해변에 있는 소돌 슈퍼는 애니가 좋아하는 가게다 밀가루와 설탕을 할인해 주기도 하고 방울토마토에서 방울 소리가 나면 구름 위의 장미를 주기도 하는데 반값에 세일 하는 주걱을 사던 날 그날을 기념일이라고 불렀지 애니는 반년마다 기념일을 챙겼지 기념일엔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을 뜯었고 애정과 분노가 가득한 드라마를 보며 녹슨 통조림을 먹었지 

     

    경멸의 자세는 낭만적이야 

    일종의 식욕이니까 

     

    애니는 주걱을 애인이라 번역했지 요리를 배우기 위해 기차를 타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늘 향하는 곳은 버스정류장, 해변의 방파제는 계단처럼 보이고 파도가 치면 허물어지고 계단에 올라탄 애니의 출항이 시작되었지 정착이란 물로 뛰어드는 것이어서 모래찜질하거나 고깃배를 타거나 달아오른 숨소리도 다 해변의 일이었지 봉돌은 무거운 것으로 애기*는 화려한 색으로 미끼가 돼지비계면 낚시의 확률은 높아졌지 문어들이 걸려들었어 

     

    우리는 두 마리 문어였고 

     

    애니는 다음 기념일을 세고 있었지

     

    빨판이 달라붙은 유리창으로 해변의 소돌 슈퍼 간판이 보였지

     

     

    * 애기 : 봉돌과 함께 매달아 물고기를 유인하는 장치

     

                 *****************

    김춘리(金春里) 시인 

    춘천출생, 2011《국제신문》신춘문예에 시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모자 속의 말』 『평면과 큐브』 공동시집 『언어의

    시, 시와 언어』를 냈다. 2012년 천강문학상을 수상했고, 2013년 경기문화재단 문예지

    원금, 2017년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사업,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

    나눔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되었다. [출처] 마경덕 카페에서 -작성자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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