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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나의 마을이 설원이 되는 동안
    나의 이야기 2023. 4. 15. 00:01

     

    나의 마을이 설원이 되는 동안

                                                                  이예진 (202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금값이 올랐다
    언니는 손금을 팔러갔다

    ​ 엄마랑 아빠는 이제부터 따로 살 거란다

    ​ 내가 어릴 때, 동화를 쓴 적이 있다 내가 언니의 숙제를 찢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언니도 화가 나서 엄마의 가계부를 찢었고 엄마는 아빠의 신문을 찢고 아빠는 달력을 찢다가, 온 세상에 찢어진 종이가 눈처럼 펄펄 내리며 끝난다

    ​손금이 사라진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집에 남고 싶은 것은 정말로 나 하나뿐일까? 언니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더는 찢을 것이 없었다 눈이 쌓이고 금값이 오르고 검은 외투를 꽁꽁 여민 사람들이 거리를 쏘아 다녔다

    ​ 엄마는 결국 한 돈짜리 목걸이를 한 애인을 따라갔지 아빠는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오겠다고 했다


    ​ 따로 따로 떨어지는 눈과
    따로 노는 낡고 지친 눈빛을

    ​집이 사라지고 방향이 생겼다

     

    ********************************


    ‘금값’이 올랐다고 한다. 은행예금 금리가 떨어지고 물가상승이 이어지면 낮은 실질금리로 세계 경제가 불안해 ‘금값’은 오른다. 치솟는 물가에 경제는 바닥을 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언니가 가진 것은 ‘금’이 아닌 ‘손금’뿐이다. ‘손금’을 팔러 갔다는 것은 ‘돈’을 벌러 갔다는 것이다. 손을 움직여야 하는 노동, 즉 몸이 밑천이다.
    부부가 헤어지고 가족이 해체되면서 그나마 노동력을 가진 언니는 집을 나갔다. ​동생인 화자가 어릴 때, 동화를 쓴 적이 있는데 언니의 숙제를 찢으면 언니도 화가 나서 엄마의 가계부를 찢고 엄마는 아빠의 신문을 찢고 아빠는 달력을 찢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불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여파는 점점 번져 온 세상에 찢어진 종이가 눈처럼 펄펄 내리며 끝이 난다. ‘가난’이 화근이었다. 경제력이 없는 무능한 가장과 딸린 가족은 생활고를 겪으며 싸움은 크게 번져 끝내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손금’이 사라진 사람들은 소식조차 없고 더는 찢을 것이 없는 상황까지 치닫는다. 급격한 산업화와 새로운 가치관으로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시대는 자식에게 자신의 일생을 바치는 희생을 원치 않는다. 암담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해 엄마는 금 한 돈짜리 남자를 따라가 버리고 아빠는 한 달에 한번만 들르겠다고 한다. 결국 혼자 남겨진 아이에게 집은 사라져버렸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서 있는 곳이 “눈 덮인 막막한 설원”이다. 따로따로 떨어지는 눈처럼 아이는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길을 가야 한다.
    눈부신 ‘설원’은 언뜻 보면 아름답고 낭만적인 제목으로 읽히지만 들여다보면 한 가정이 뿔뿔이 흩어지는 “냉담하고 불안한 현실”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담담함 속에 한 가족의 뼈가 시린 아픔이 있다.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혈연 중심의 대가족 형태에서 핵가족의 등장으로 가족구성원의 유대감이나 소속감이 약화되면서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관(家族觀)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

    우리詩 평론 (2023년 4월호)              - 작성자 김길순-

     

     

     

    김순자 진달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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