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까치
최지안
나무봉지는 과자다
흔들면 새가 쏟아졌다
상추밭에서 저녁을 쪼더니
쥐똥나무로 갔다가 단풍나무 속으로 퐁당 빠졌다
찰칵찰칵 핸드폰으로 찍자 찌르르 경보를 울린다
일제히 합세해서 울어댔다 새들에게 나는
침입자
내 집에서 나가라
새들도 나무에게 방세를 주었을까
출입문을 여닫을 때마다 나무가 주섬주섬 새들을 삼켰다가 도로 뱉어내었다
물까치는 꽁지깃이 연한 하늘색이다 몸보다 꽁지가 길어 작은 소리에도 파드득 놀라 옮겨 다니며 운다
약한 것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가보다
열 몇 번의 주소지를 바꾸며 살던 아비처럼
방 빼라는 말을 늘 머리 위에 얹어놓고 말이지
아비를 흔들면
시큰한 술 냄새와 기약 없는 희망이 주머니 속 구겨진 천 원짜리처럼 떨어지곤 했다
밟으면 과자처럼 바삭하게 부서지지도 않았다
물까치 저녁으로 귀가 중이다
나무의 지퍼를 채우고 잎사귀에 하루를 파묻는다
좋겠다
돌아갈 집이 있어서
날개조차 없던 아비는 평생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했다
최지안 (수필가. 시인)
2021년 제4회 남구만 신인문학상 수상
수필집 『행복해지고싶은날 팬케이크를 굽는다』, 『비로소 나는 누군가의
저녁이 되었다』
백두산 자주꽃방망이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그대 떠난 빈자리에 外 3편 (86) 2023.04.18 (詩) 안전 안내문자 (89) 2023.04.17 (詩) 나의 마을이 설원이 되는 동안 (84) 2023.04.15 (詩) 김소월 시 감상 (84) 2023.04.14 앙리 마티스 그림 外 박방영 그림 감상 (88) 2023.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