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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그대 떠난 빈자리에 外 3편나의 이야기 2023. 4. 18. 00:01
그대 떠난 빈자리에이위발
바람이 불었다
그대가 초승달처럼 절정을 향해 치달릴 때
하늘은 그을린 솥단지 바닥처럼 시커멓고
구름장은 한 군데도 틈새가 없었다
사납게 일렁이는 나뭇잎들의 물결에
손금 같은 산봉우리들이 비에
파랗게 질린 채 서 있었다
봄날 벌레처럼 의식은 벅찬 감흥으로 차올라
목련나무 잎들은 하나의 욕망이고
기도이고 눈물이고 회한이었다
그대와 마주치는 신비한 순간
나뭇잎들도 물보라 되어
몰려오고 솟구치고 날아다녔다
눈물보다 더 비극적인 그대의 미소
어떻게 내 심장이 비둘기의 둥지일 수 있으며
어떻게 우리들의 편지들이 구구거리며
날갯짓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안개는 엉긴 우유처럼
짙어지고 있는데상처,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이위발
열차를 타고 달리는
사라진 그대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 숙이듯
당신의 끌림에
짙은 속눈썹에
매달린 물방울을
빨아주고 싶었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눈으로
보기 싫어상처, 그 외로움에 대하여 / 이위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모든 것이 되기도 하는
슬픔의 까닭이 결핍이듯이
결핍이 없는
나의 시선은
균형을 잃고
손을 흔들어 보았지만
그대는 표면과 이면의
양날을 품은 채
눈꺼풀이 커튼 열리듯
달덩이 하나 쑤욱 올라와
보란 듯이 바람맞은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하는데상처, 그 가치에 대하여 / 이위발
그림자가 푸른 물에 잠겨봐도 옷 젖는 것은 아니지만
꿈속에 푸른 산을 걸어봐도 다리가 아픈 것은 아니지만
상처에 상처를 내면 상처가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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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위발 시인
1959년 경북 영양 출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
현재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출처}시인회의 카페에서 -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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