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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나석중
괜찮다
몸 한구석에 귀뚜라미가 울어도
보이지도 않는 귀뚜라미는 왜 와서 우는지
요즈음 보이지도 않는 아들에게 섭섭한 생각이 들 때
나는 깜짝깜짝 뉘우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나에게 서운한 때 많았을 거라고
그러니 아들아 너는 걱정하지 마라
너도 일가를 이룬 나무, 몰아치는 비바람 잘 견디며
귀뚜라미처럼 괜히 와서 우는 일 없도록,
해가 짧아지면서 오른쪽 무릎에서 악기 소리가 나지만
몸이 알아서 현 한 줄 심심치 않게 튕겨주는 일
이제 뼈가 닳고 가슴이 밭는 일도
괜찮다.
- 나석중 시선집 『노루귀』(도서출판b,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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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늙었다/아버지도 늙는다"는 사실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을 군인으로 사셨던 아버지, 군인처럼 언제나 군인처럼, 청년처럼 언제난 청년처럼 서 계실 줄 알았던 아버지.
아버지가 구십을 앞둔 노인이라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당신도 젊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제 무거운 거 함부로 들지 마세요."
몇달 전 그리 말씀드렸건만, 지난 달 베란다 화분을 옮기시다가 1번 요추가 골절되었답니다.
병원에서 수술을 잘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자리에 저리 누워 계신 아버지.
평생 "서 있는 아버지"만 보다가 처음으로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그리 말씀하시지만,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직 일가를 이룬 느티나무가 아닌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그늘이 필요한 묘목인 모양입니다.
[출처] 느티나무/나석중/소통의 월요시편지 884호 _마경덕 카페에서 옮겨왔습니다.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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