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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
조하혜
이른 새벽에 양말부터 찾아 신는 발은 가난하다
당신과 이별한 다음날, 고구마를 삶아 먹던
허기는 가난하다
고구마를 찌르던 젓가락은 가난하다
고구마를 제 몸 안으로 삼키던 창자는 가난하다
사랑한다면서 손이 어여쁜 여인은 가난하다
시간이 없어서 밤낮 고단한 사람은 가난하다
가난해서 이별하는 사람은 가난하다
가난 때문에 가난해진 사람은 가난하다
가난함으로 인해 전혀 가난하지 않게 된 사람은 가난하다
낙엽진 단풍나무에게서 앙상한 가지를 기억하는
눈은 가난하다
가난하다고 말하는 이 엄살은 가난하다
가난보다 더 빈곤하다*****************************************
※ 조하혜
1994년 <현대시사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도넛,비어있음으로 존재한다> <울지 말아요 비둘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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