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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
마경덕
야트막이 흐르는 물이 주춤거린다
가운데 박힌 돌 하나에 물의 발목이 엉켜 물주름이 여러 겹이다
중랑천을 건너는 새떼의 발톱에 걸려 또 허공이 접힌다 수다스런 날갯짓에 오후가 서쪽으로 끌려간다
즐비한 벚나무는 봄의 주름을 털어버리고 홀가분한데,
길가 장미 떼는 겹겹으로 가슴이 부풀고 가시는 이파리 뒤에서 붉은 꽃송이를 들어올린다 건드리면 피를 보고 마는 숨은 결이다
손잡고 걷던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천변을 걷던 노인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다 벚나무 사이 노을을 바라보던 벤치가 텅 비었다
돌고 돌아도 닿지 않는 아득함은 몇 겹일까
겹, 겹, 겹
물에 빠진 끝물 햇살을 업고 바람이 물위를 걷는다 살랑이는 뒤꿈치에서 반짝이는 잔주름이 번지고 있다
뻐꾸기가 흘린 울음의 겹을 다 세지 못했는데 여름의 허리가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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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편견』 2021. 겨울호 -작성자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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