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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구두 닦는 소년나의 이야기 2023. 7. 16. 00:01
구두 닦는 소년
정호승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구두통에 새벽별 가득 따 담고
별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눠 주기 위해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하루 내 길바닥에 홀로 앉아서
사람들 발아래 짓밟혀 나뒹구는
지난밤 별똥별도 주워서 닦고
하늘 숨은 낮별도 꺼내 닦는다
이 세상 별빛 한 손에 모아
어머니 아침마다 거울을 닦듯
구두 닦는 사람들 목숨 닦는다
목숨 위에 내려앉은 먼지 닦는다
저녁별 가득 든 구두통 매고
겨울밤 골목길 걸어서 가면
사람들은 하나씩 별을 안고 돌아가고
발자국에 고이는 발바람 소리 따라
가랑잎 같은 손만 굴러서 간다정호승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 다수'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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