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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 詩. 그리고 無意識(뉴욕 중앙일보 )게재 글
    나의 이야기 2023. 8. 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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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詩. 그리고 無意識            

                                                                                                                     서 량

                               

    자각몽(自覺夢, lucid dream)에 대하여 생각한다. 꿈을 꾸면서 자신이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두뇌작용이다. 자각몽은 꿈의 내용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특혜를 부여한다.

     

    8000년 전 티벳의 요가수행에서 출발한 자각몽. 2000년 전 불교수행의 분파로 다시 성행된 자각몽. 1970년대부터 과학적 연구대상으로 대두된 자각몽.  

     

    흉측한 괴물에게 쫓기는 꿈을 꾸면서 아, 지금 내가 꿈을 꾸는 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순간 당신은 혼비백산으로 흩어지는 공포심을 컨트롤하면서 괴물에게 말을 거는 여유가 생긴다.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보는 대담한 질문에 괴물이 잠시 주춤한다. 괴물의 언어감각은 당신을 따라잡지 못하는 법. 괴물이 위협적인 행동으로 당신을 계속 괴롭힌다면, 그럼 우리 또 보자, 하고 소리친 후 꿈에서 깨어날 수 있다. 이 세상 아무도 괴물에게 잡혀 먹히는 꿈을 꾸다가 사망한 사례는 없다.    

     

    시를 쓸 때도 그렇다. 자신이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면서 자각몽 같은 시를 쓰는 버릇이 생긴다. 어렵지만 재미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어도 모든 시인들이 그러리라는 생각이다. 초현실적인 구절이 튀어나오기 일쑤다.

     

    현대시도 소설의 한 문단이나 유행가 구절처럼 금방금방 머리에 쏙쏙 들어와야 된다는 생각에 빠진 사람들이 내 시가 난해하다는 평을 내린다. 한편의 시를 이해하는 것은 이상한 꿈을 이해하는 것만큼 아리송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한 번 읽고 나서 네, 잘 알겠습니다, 혹은 어머, 이 시 참 좋아요, 하며 말하고 난 후 얼른 잊혀지는 시를 쓰고 싶지 않다.

     

    꿈도 시도 외래어나 어려운 사자성어가 판을 치지 않는 이상, 한 장면이나 단어 하나하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연결성, 한 구절과 다른 구절의 연관성이 비상식적인 경우가 빈번하다. 다큐 영화와 신문기사가 얼른 이해되는 반면에 꿈과 시가 알쏭달쏭하게 다가오는 차이점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꿈은 응축(凝縮, condensation)이라는 메커니즘을 번히 활용한다. 꿈에 보는 여동생이 어머니 목소리로 말하는 경우가 그렇다. 전위(轉位, displacement) 법칙으로 사물을 바꿔치기도 한다. 꿈 속에서도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작동하고 있는 ‘초자아, superego’의 엄격한 검열을 회피하려는 시도다. 꿈이건 생시이건 한 사람의 옷자락을 잡는다는 것은 그 사람 자체를 잡고 싶은 욕망의 전위현상이다.

     

    극화(劇化, dramatization) 또한 꿈의 기본설정에 크게 기여한다. 밍밍한 장면은 관객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꿈은 자신을 관객으로 삼은 자신의 제작품이다. 당신 자신이 드림 프로듀서다. 연출, 각색, 다 자신이 도맡아서 하는 무의식적 두뇌활동이다. 천사가 전해주는 신의 계시 같은 고전적 세팅을 떠나서 단 한 명의 관객을 놓고 단 한 번 돌아가는 극히 사적인 동영상이다.

     

    시에서 일어나는 응축현상이 시의 함축성을 높이며 지루한 설명을 거부한다. 시적 표현은 늘 말을 바꿔 함으로써 간접성의 부드러움을 시사한다. 시인들이 자주 거론하는 ‘육화(肉化)’라는 느끼한 기법 또한 시 특유의 드라마를 창출한다.

     

    꿈과 시는 무의식의 산물이다. 우리의 언어구조 자체가 무의식을 닮았다는 프랑스 정신분석가 라캉의 폭탄선언을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적 대화조차 무의식의 소산이라면 당신과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 서 량 2023.08.20

    뉴욕 중앙일보 2023년 8월 23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 서 량

    2023년 현재 뉴욕 근교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정신과 전문의 • 서울의대 졸업 후 도미 • 뉴욕한국일보와 조선문학 詩부문 등단 • 2016년, 네 번째 시집『꿈, 생시, 그리고 손가락』출간 •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즐겨 부는 아마추어 연주가 • 2006년 4월부터 현재까지 뉴욕중앙일보에 고정 컬럼 「잠망경」을 격주로 집필 중 • 이 사이트를 〈김정기의 글동네〉의 뉴욕, 뉴저지 회원들과 공유함               -옮겨온 글 김길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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