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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벌레의 우울증
마경덕
당신은 사슴입니까
아니면 벌레입니까
두 개의 이름을 합성해 사용하면 불법입니다
동물의 나라
아니. 곤충의 나라에서는 말이지요
두 개의 턱을 뿔로 사칭한 당신의 교묘한 수법에
인간도 사슴도
모두 깜박 속았습니다
타인의 이름을 허락 없이 도용해
신분상승을 한 죄도 추가합니다
강박증도 정상참작이 되느냐고요
썩은 나무를 파먹던 과거를 지우고 싶다고요
관(冠)처럼 도도한 뿔을 보면 주눅이 든다고요
하긴,
인간의 세계에서도 그럴듯한 변명이 형량을 줄여주긴 하지요
물론,
먼저 사슴과 합의를 한다면 가능합니다
마경덕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신발論』『글러브 중독자』『사물의 입』『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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