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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1
마경덕
기대했던 연극표는 매진되고
모처럼 주머니에 담아온 오후는 휴지처럼 구겨졌다
쓸모없는 시간 한 토막을 대학로 어딘가에 버려야 했다
골목골목을 지나 외딴 소극장
눅눅한 공기를 밀치고 가파른 계단 끝에 닿으니
흐릿한 불빛 아래 객석은 텅 비었고
무대는 호젓했다
장내를 쓱 훑어보던 키 작은 남자는 검은 커튼 속으로 사라지고
관객은 혼자였다
나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연극은 무사할까
긴 대사와 짙은 분장이 서성거리는 무대 뒤편
무명 배우들의 초조한 눈빛이 떠오르고
왠지 모를 쓸쓸함이 객석을 채우고 있었다
맨정신으로 살 수 없는 이들은 우리의 시간 너머로 넘어가
웅크려 앉았다가, 식어가는 심장을 가동시켜
잠시 이 세상으로 걸어 나오는 것인데,
연극 같은, 연극이 아닌,
이 비극으로 며칠을 더 버틸 수 있을까
한 사람을 위해, 가라앉은 무대를 안간힘으로 들어올리는 연기는
극한의 노동일 것이다
관객 1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관객 2인 그림자가 내 뒤를 따라나왔다
「학산문학」 2023. 가을호
* 출처 마경덕 카페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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