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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바람 같은 연인 김길순
산에서 부는 바람은 다소곳이 살랑거리면서도 의기양양하게 쌩쌩 거린다.
산바람의 기분으로 만년설을 뭉쳐들었을 때 골짜기서 연인과
그 눈 뭉치를 같이 논아먹었을 때의 기분은 아이스크림이나 다를 봐 없이
가슴이 사르르 녹는다.
우리는 말없이 걸었고 말없이 뛰었다. 다소곳이 살랑살랑 걷다가 의기
양양하게 쌩쌩 거리며 뛰었다. 산을 내려오다가 우리는 손을 잡고 있었다.
산에서 부는 바람은 이렇게 살랑거리다가 손을 잡게 했다.
산에서 부는 바람같이 우리는 만년설을 나누어 가지면서 만났고,
그 눈이 다 녹을 무렵에 헤어졌다.
손가락에 붙은 아이스크림을 핥듯,
그렇게 가난한 시간을 야금거리면서 헤어졌다.
살랑살랑 불다가 쌩쌩 불어재끼는 바람같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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