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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설화를 신고나의 이야기 2024. 2. 17. 06:43
설화를 신고
홍혜향
증편 상자를 열자 설원이 펼쳐졌다
둥글게 뭉친 눈덩이마다마당에서 모이를 쪼던 새발자국이 찍혀서 왔다
한입에 넣으니 금세 녹고 만다어릴 적 내리는 눈송이를 받아먹던 맛이다
담장 밑 푹푹 쌓인 설화를 신고 저물도록
눈뭉치를 던지던 웃음도 베어 물었다싸우면 긴 머리를 서로 묶어 놓고 몸에 움이 돋을 때까지
풀어주지 않던 전설 속에는
기장떡을 좋아하시던 할머니가
막걸리를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얼기설기 엮여 있다담장 기와를 쌓아놓고 기합 소리와 함께 줄행랑을 친
왼손잡이 오빠는
올해도 철새 도래지로 거처를 옮겼다는 소식만 전해왔다가족이 다 모이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마흔 개도 넘게 부풀어 나온다
우리는 모두 상자 같은 집 속에 살았다*******************************************
『모던포엠』2024.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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