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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훈련
    나의 이야기 2024. 3. 12. 16:01

     

     훈련

                                   박남수

    팬티 끈이 늘어나
    입을 수가 없다. 불편하다.
    내 손으로 끈을 갈 재간이 없다.
    제 딸더러도 끈을
    갈아 달라기가 거북하다.

    불편하다. 이제까지
    불편을 도맡았던 아내가
    죽었다. 아내는
    요 몇 해 동안, 나더러
    설거지도 하라 하고, 집 앞
    길을 쓸라고도 하였다.

    말하자면 미리 연습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가시게 그러는 줄만
    여기고 있었다. 빨래를 하고는
    나더러 짜 달라고 하였다.

    꽃에 물을 주고, 나중에는
    반찬도 만들어 보고
    국도 끓여 보라고 했다.
    그러나 반찬도 국도
    만들어 보지는 못하였다.

    아내는 벌써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팬티
    끈이 늘어나 불편할 것도
    불편하면서도 끙끙대고 있을
    남편의 고충도

    (시집 『그리고 그 이후』, 1993)

     


    그러한 아내의 ‘훈련’에 대해 그간 성가시다며 짜증만 냈던 자신의 무지함을 뉘우치는 과정을 통해 화자는 아내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러한 ‘불편’을 겪을 때마다 시인은 아내의 빈자리를 깨닫게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깊이 인식하고 준비하게 된다. 이 시에는 이러한 시인의 생의 진솔함과 원숙함이 잘 드러나 있다.

    박남수(朴南秀)

    1918년 평양 출생
    1939년 『문장』에 「마을」,「초롱불」,「밤길」 등이 추언되어 등단
    1941년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거쳐 일본 츄우오(中央)대학 법학부 졸업
    1954년 『문학예술』 편집위원
    1957년 조지훈, 유치환 등과 함께 한국시인협회 창립
    1957년 제5회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1959년 『사상계』 상임 편집위원
    1973년 한양대학교 문리대 강사 역임 및 도미(渡美)
    1994년 사망

    시집 : 『초롱불』(1940), 『갈매기 소묘』(1958), 『신(神)의 쓰레기』(1964), 『새의 암장(暗葬)』 (1970), 『사슴의 관(冠)』(1981), 『서쪽, 그 실은 동쪽』(1992), 『그리고 이후』(1993), 『소로(小路)』(1994), 『박남수전집』(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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