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덮어 줌으로 인해서 하나같이 희게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지만 , 특히 그 중에서도 눈에 덮힌 공원, 눈에 안긴 성사, 눈 밑에 누운 무너진 고적, 눈 속에 높이 선 동상 등을 봄은 일단으로 더 흥취의 깊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모두가 우울한 옛 시를 읽은 것과도 같이 배후에는 알 수 없는 신비가 숨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눈이 내리는 공원에는 아마도 늙을 줄을 모르는 흰 사람들이 떼를 지어 뛰어다닐지도 모르는 것이고, 저 성사안 심원에는 이상한 향기를 가진 알라바스터의 꽃이 한송이 눈 속에 외로이 피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며, 저 동상은 아마도 이 모든 비밀을 저 혼자 알게 되는 것을 안타까이 생각하고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진섭의 <백설부>수필 간결체 중 일부
※ 작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한 겨울에 순수무구하게 내리는 흰눈을 도시인의 감회로써 서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요,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과연 뉘라서 너희의 무정부주의를 통제할 수 있으랴!"는 등의 구절이 절창을 이룬다. 여기에서는 '부'가 사용되는데, 이 '부'란 원래 글귀 끝에 운을 달고 대를 맞추어 짓는 한문체의 한 기자임을 밝혀둔다. 이 글은 만연체 문장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 작성 김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