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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정공채
1
어쩌다 우리 인생(人生)들처럼 바닷가에 쌓여 있다.
부두(埠頭)는 검은 무덤을 묘지(墓地)처럼 이루고
그 위로 바람은 흘러가고, 검은 바람이 흘러가고,
아래론 바닷물이 악우(惡友)처럼 속삭이고, 검은 물결이 나직이 속삭이고
어쩌다 우리 인생(人生)들처럼
바닷가에 쌓여 있다.
2
억만년(億萬年)의 생성(生成)의 바람소리와
천만년(千萬年)의 변성(變成)의 파도소리와
하늘을 덮고 땅을 가린 원시림(原始林)의 아우성과
화산(火山)과 그때마다 구름같이 우우 달리던 둔한 동물(動物)들이
캄캄한 지층(地層)으로 지층으로 흘러온 뒤로
용암(熔岩)과 산맥(山脈)의 먼 먼 밑바닥에서
귀머거리 되고 눈머거리가 되고, 검은 침묵(沈默)에 죽었노라
검은 침묵(沈默)에 생성(生成0하는 꽃이었노라.
3
출발(出發)을 앞둔 부두(埠頭)가나
마지막 여낭(旅囊)을 둔 종착역(終着驛)에서
사랑이여, 당신도 딸기밭.
나도 빠알간 불타는 딸기밭.
당신이 나를 태우던 불타는 도가니에
내가 당신을 태우니까
우리가 돌아갈 고향(故鄕)은
온통 딸기밭으로 빨갛게 빨갛게 불타오르는
강렬(强烈)하게 딸기가 완전(完全)히 익는 끓는 밤― 연옥(煉獄)이다.
※
정공채 시인의 시 석탄이다. 첫 연애 "어쩌다 우리 인생들 처럼 바닷가에 쌓여 있다."
표현한 것처럼, 이 시인은 혼돈한 시대적, 정신적 상황을 배경으로 석탄 등의 소재를 원시적,
또는 행동적 힘의 응결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석탄이 지니는 이미지나 그 성격을
묘지라든지 "딸기" '연옥' 등 다양하게 유추하여 고양된 의식을 내비치고 있다.
이 연옥이란 죄를 범한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불에 의한 고통을 받음으로써 그 죄가 씻어진다는 곳을 말한다. 마지막3연 끝의 '당신도 딸기밭 - 나도 빨간 불타는 딸기밭 - 당신이 나를 태우면 불타는 도가니에 - 내가 당신을 태우니까, - 우리가 돌아갈 고향은 - 온통 딸기밭으로 빨갛게 불타오르는- 강렬하게 딸기가 완전히 익는 지는 독자의 몫이다. 시 뿐 아니라 모든 예술은 설명이 아니라 암시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상상의 확장을 위해서 그렇다. 시 석탄이 주는 이미지와 뜻을 영원한 한국의 명시를 읽고 내용을 더 알게 되었다. -작성 김길순-정공채 [鄭孔采, 1934.12.12 ~ 2008.4.30] 시인 1934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 1957년 ≪현대문학≫에 박두진 시인 추천으로 <종이 운다>, <여진>, <하늘과 아들> 등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1958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시집으로 『정공채 시집 있습니다』(1979), 『해점(海店)』(1981), 『아리랑』(1986) 등이 있음. 1959년 <석탄>, <자유>, <행동> 등의 시로 제5회 현대문학상 수상. 제2시집 『해점』으로 제1회 한국문학협회상 수상. 1998년 제8회 편운문학상 본상 수상. 『부산일보』 기자, 『민족일보』 기자, 문화방송 프로듀서, 한국문인협회 및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펜클럽 한국 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역임. 2008년 경남 하동 금오영당에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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