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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서정주어느 해 봄이던가, 먼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의 부인을 모시고 성안 동백꽃나무 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신듯이 앉아계시고, 나는 풀밭 위에 흥근한 낙화가 안쓰러워
주워 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 놓았습니다.
쉬임 없이 그 짓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그 뒤 나는 년년이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들을 주서다가 디리던 그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아줄이가 땅 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내가 주워 모은 꽃들은 제절로 내손에서 땅우에 떨어져 구을르고 또 그런
마음으로 밖에는 나는 내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
********************************************************************************● 특별한 형식적인 구성미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도 시를 이루는 까닭은 그의 순후한 정서에 있다.
그리고 그 정서는 평생을 경영해 온 시업과 연결되고 있다. 정서를 넌즈시 약간씩만 내비침으로서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과 함께 일종의 신비의식을 자아내게 하고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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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1915년 5월 18일 ~ 2000년 12월 24일(향년 85세)
*영원한 한국의 명시를 읽고 -작성 김길순-'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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