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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함께 먹던 고동맛 그리고 비빔밥전체보기 2010. 12. 25. 04:38
연인과 함께 먹던 고동맛 그리고 비빔밥
김길순
서울에 살던 우리는 기차를 타고 부산 해운대로 향했었다. 푸른 하늘아래 펼쳐진 남빛 바다, 그 위로 하얀 파도가 부셔지고 있었다. 내가 입은 물방울무늬 원피스자락은 하늘하늘 바람에 나부끼고 긴 생머리 결은 입술에 스쳤다. 우리는 긴 모래사장을 거닐며 무엇을 먹었겠는가. 그것은 고동이었다. 그 짭짤한 고동 맛이 잊을 수가 없다. 길게 이어진 해변을 걷는 동안 각각 들고 있는 종이컵에 든 고동은 동이 났다. 해운대의 은색 물보라가 그리워 다시 찾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 묘한 고동의 맛도 잊을 수가 없다.
두 번째 잊혀 지지 않는 것은 늦여름에 처음 가본 남원 춘향골이었다. 우리 두 사람 수중에 돈이 떨어졌다. 딸딸 긁어도 제대로 된 음식을 사먹을 수가 없었다. 남원역전 나무아래서 서성거리다 역전 노점에서 파는 비빔밥을 사먹기로 했다. 그때 생각으로는 내가 평생에 이런 역전 노점에서 앉아 밥을 사먹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부자연스럽다고 할까 부적응이라 할까, 그런 교만 같은 게 목까지 차올라 있던 터였다.
흰 블라우스에 검정 스커트를 입은 나는 방년 25세였다. 그와 함께 운봉이라는 산골에 다녀와야 하는 급한 일이 있어 멀리 따라 나선 것이었다. 어찌나 시장하던지 쌀밥에 시금치 넣은 비빔밥을 수분 내에 뚝딱했다. 난생 그렇게 맛있게 먹던 비빔밥을 잊을 수가 없다. 돈이 아주 저렴했다. 그 때는 현금 카드 같은 것이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미국여행이나 구라파 여행을 할 때 기내에서 주는 도시락은 별로 기억에 없다. 그러나 부산 해운대의 고동과 남원의 비빔밥 맛은 지금까지 잊혀 지지 않고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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