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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이 명함이다
이두철
40여 년 지갑을 지키던 명함이
직책과 함께 사라졌다
없는 명함은 아침을 먹고
넥타이 메고 출근할 곳도 없다
명함도 없는 지갑이
간편한 복장으로 문화센터도 가고
칠보산을 오르고 탁구 테니스도 치러 간다
문우들과 한두 줄 시 쓰는 얼굴이
대신 명함이 되었다
칠순에 등단하고
매년 오두막 같은 시집을 짓는다
미분양되어 한뎃잠을 자는 시집
명함이 되어 낯선 손으로 건너간다
웃으며 감사히 받아갔는데
잘 읽었다는 소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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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로 당당히 등단한 시인은 이제 시집이 명함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시집 속에는 살아온 지난날의 족적이 선명히 찍혀있으니 이보다 확실한 명함이 어디 있으랴. 한 편의 시를 위해 새벽 산을 오르고 잠을 설치며 시편들을 모아 한 권의 시집을 완성하지만 시인의 노고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별반 관심이 없다. 시집을 받아가고도 아무 반응이 없으니 시인은 섭섭함을 감출 수가 없다. ‘쓸모없는 힘’으로 시는 살아간다고 한다. 자기중심적인 세상에서 시가 어떤 부나 권력의 쓸모로 쓰였다면 시는 일찍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대다수에게 외면당하면서도 시를 끔찍이 사랑해주는 소수의 독자와 시인이 있기에 시는 아직 존재한다. 세상의 가치 기준과 시인이 살아가는 기준이 다르기에 명함으로 건네준 시집의 행방이 궁금해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미분양되고 한뎃잠을 자도 피와 땀이 깃든 시집은 시인에게 세상의 어떤 명함보다 소중한 명함이다. -해설 마경덕 시인- -작성 김길순-
* 이두철 시인
전북 고창 출생 「미래시학」으로 등단 시집『계단 끝에 달이 뜨네』『소반』『붉은 찔레꽃』
『가을 벚꽃』『달동네에 달이 없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초대관장 역임
안산시청 주민생활국장 역임. 홍조근정훈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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