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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말랑말랑한 말들을나의 이야기 2023. 4. 26. 00:01
말랑말랑한 말들을
김기택
돌 지난 딸아이가
요즘 열심히 말놀이 중이다.
나는 귀에 달린 많은 손가락으로
그 연한 말을 만져본다.
모음이 풍부한
자음이 조금만 섞여도 기우뚱거리는
말랑말랑한 말들을.
어린 발음으로
딸아이는 자꾸 무어라 묻는다.
발음이 너무 설익어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억양의 음악이 어찌나 탄력있고 흥겨운지
듣고 또 들으며
말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음직한 비밀스러운 문법을
새로이 익힌다.
딸아이와 나의 대화는 막힘이 없다.
말들은 아무런 뜻이 없어도
저 혼자 즐거워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뛰어논다.
우리는 강아지나 새처럼
하루종일 짖고 지저귀기만 한다.
짖음과 지저귐만으로도
너무 할말이 많아 해 지는 줄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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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경기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울음소리만 놔두고 개는 어디로 갔나』 등'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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