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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죄책감
    나의 이야기 2024. 3. 15. 16:01

     

    죄책감

                                          최문자


    남편 3주기 기일
    나는 오늘 오래오래 노를 저어야한다
    슬픔은 끈적끈적하고 사방으로 멀고 단단하다
    사과를 깎고 있을 때
    내가 욕조에 물을 틀고 있을 때
    그는 나를 용서했을까
    물을 잠그고 손을 말리고
    노트북을 꺼내 어디를 펼쳐 봐도
    용서 받을 수 없겠지
    용서처럼 달달한 휴식은 없는데
    죄책감이 후회를 스쳐 지나갈 때
    서로 뚫지 않고 왜 서로 은밀하게 스미나

    용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몇 번이나 집을 걸어 나갔다
    저수지 옆길을 돌아 발자국이 끝나면
    이렇게 걸어서 곧 용서 받을 수 있을까 하고 더 오래 걸었다

    집으로 오는 길
    그는 언제나 용서할 듯한 얼굴로
    물새처럼 바다로 가고
    노을 아래서 나는 허공을 젓고 있다
    죄책감은
    모래 언덕
    그칠 줄 모르고 푹푹 빠지는 다음 생애가 있다


            ***************************



    [최문자 시인 약력]
    - 1943년 서울 출생
    - 시인이며 성신여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 협성 대학교 총장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과 사이사이 새』, 『파의 목소리』, 『우리가 훔친 들이 만발한다』 등

     

     

    바다와 물새 다음 이미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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