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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최문자
남편 3주기 기일
나는 오늘 오래오래 노를 저어야한다
슬픔은 끈적끈적하고 사방으로 멀고 단단하다
사과를 깎고 있을 때
내가 욕조에 물을 틀고 있을 때
그는 나를 용서했을까
물을 잠그고 손을 말리고
노트북을 꺼내 어디를 펼쳐 봐도
용서 받을 수 없겠지
용서처럼 달달한 휴식은 없는데
죄책감이 후회를 스쳐 지나갈 때
서로 뚫지 않고 왜 서로 은밀하게 스미나
용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몇 번이나 집을 걸어 나갔다
저수지 옆길을 돌아 발자국이 끝나면
이렇게 걸어서 곧 용서 받을 수 있을까 하고 더 오래 걸었다
집으로 오는 길
그는 언제나 용서할 듯한 얼굴로
물새처럼 바다로 가고
노을 아래서 나는 허공을 젓고 있다
죄책감은
모래 언덕
그칠 줄 모르고 푹푹 빠지는 다음 생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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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자 시인 약력]
- 1943년 서울 출생
- 시인이며 성신여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 협성 대학교 총장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과 사이사이 새』, 『파의 목소리』,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 등'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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