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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최문자어릴 적 외할머니가 이불 빨래하는 날은
뒷마당에서 잿물을 내렸다
금이 간 헌 시루 밑에서 뚝뚝 떨어진
재의 신음소리
꼭 독한 년 눈물이네
열 아홉에 혼자된 외할머니 독한 잿물에
덮고 자던 유년의 얼룩들은 한없이 환해지면서
뒷마당 가득 흰 빨래로 펄럭였다
하나님은 내가 재가 되기를 기다렸다
하루종일 재가 되고 났는데도
아직 남아 있는 뭐가 있을까? 하여
쇠꼬챙이로 뒤적거리며 나를 파보고 있었을 때
재도 눈물을 흘렸다
어제의 재에다
새로 재가 될 오늘까지 얹고
독한 잿물을 흘렸다
조금도 적시기 싫었던 사랑까지
한없이 하얘져서
세상 뒷마당에 허옇게 널려 있다
재는 가끔 꿈틀거렸다
독한 눈물을 닦기 위하여
※
최문자 시인의 시(눈물)이다. 여기에서 '눈물'은 독한 눈물인 동시에 인생을 빨래하는 눈물이라 하겠다.
'잿물'도 마찮가지다. 그 독한 잿물도 역시 세탁물을 세탁하는 동시에 '인생의 빨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재'는 "빨래'의 재료다. 그리고 그것은 눈물과도 연결된다.
● 최문자 시인 약력
1947년 서울에서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졸업. 현대문학 박사. 저서로는 시집으로 『귀 안에 슬픈 말 있네』, 『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 등과 그밖의 저서로는 『시창작 이론과 실제』『현대시에 나타난 기독교사상의 상징적 해석』등 다수가 있음. 협성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및 제6대 협성대학교 총장 역임. 2008년 제3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2009년 제1회 한송문학상 수상. -작성 김길순-'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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