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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시<가짜>나의 이야기 2025. 6. 18. 00:01
가짜 공광규 며칠 전 임주연이 진행하는 라디오시가 있는 클래식 프로에 시낭송 녹음을 했는데오늘 방송을 들어보니내 목소리가 아니다 중학생이었를 때처음 시골학교에 부임했다는 예쁜 여선생님은 내 목소리가 낮고 굵어교실에 우렁우렁 울린다고 칭찬하셨는데 감리교회 성가대원이었던 고등학교 때는지휘자였던 권사님한테광규, 너 베이스 최고야!이런 칭찬을 들었는데 오늘 녹음된 목소리를 들어보니뱃속 저 아래 횡격막 울림이 아니라평생 굽히고 밥벌이를 한시종의 나긋나긋한 미성이었다 내가 가짜가 다 되어있었다 ****************** ※공광규1966년 동서문학등단 시집등,신석정문학상 수상● 계간문예2025년 봄호에서 발췌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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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눈사람나의 이야기 2025. 6. 17. 01:28
202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아름다운 눈사람 / 이수빈 아름다운 눈사람 이수빈 선생님이 급하게 교무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신다 나는 두 손을 내민다 선생님이 장갑을 끼워주신다 목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끼우고 실핀으로 단단히 고정해주신다 나는 손을 쥐었다 편다 부스럭 소리가 난다 마음 편히 놀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운동장 위로 얕게 쌓인 눈 새하얗고 둥글어야 해 아이들이 말한다 눈을 아무리 세게 쥐어도 뭉쳐지지 않고 흩어진다 작은 바람에 쉽게 날아간다 흙덩이 같은 눈덩이를 안고 있는 아이들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입을 벌리는 아이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다룬다 개를 쓰다듬듯 품에 안은 채 몇 번이고 어루만진다 눈덩이가 매끈하고 단단해진다 아주 새하얗고 둥근 모양의 완벽한 눈덩이를 갖는다 눈덩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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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소리나의 이야기 2025. 6. 16. 00:01
도마 소리 김길순 연일 아파트 방송에선 소음을 줄이라는 말이 나온다.아침 일찍부터 냉장고에 몇 개 사다둔 단호박 하나를 먹어야 하는데 도마 위 칼질 소리가 아랫집에 소음이 누가 될까 조심스레 망스린 끝에 도마 위 단호박에 식칼을 얹고 방망이로 콩콩콩 내리쳤더니 반으로 갈라졌다.그리고 다시 콩콩 네갈레로 갈랐다. 기쁘나 슬프나 생을 함께 하는 도마반찬거리로 리듬을 타는 도마소리가 있었기에 아침식탁은 노랗게 찐 단호박과 찐 감자를 먹으며 다이어트에도 효험이 있겠지 했다. 설거지를 마친 후 잠시 쉬어 가는햇살 아래 도마를 걸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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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팀목에 대하여나의 이야기 2025. 6. 15. 00:28
버팀목에 대하여 복효근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싹이 트고 다시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뿌려주기도 하지만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이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이제는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만져 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나는 싹을 틔우고 꽃 피우며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전북 남원 출신으로 전북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1991년 계간 시전문지(시와시학상. 신석정문학상.박재삼문학상. 시인편견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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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망율도西望栗島나의 이야기 2025. 6. 14. 00:01
서망율도西望栗島 이상 시인 삼동에 배꽃이 피었다는 동리에는 마른 나무에 까마귀가 간수처럼 앉아 있을 뿐이었다.비탈에서는 적토 빛 죄수들이 적토를 헐어 낸다. 느끼하니 냄새 풍기는 진창길에 발만 성가시게 적시고 그만 갈 바를 잃었다.강으로나 가볼까. 울면서 수채화 그리던 바위 위에서 나는 도(度) 없는 안경알을 닦았다. 바위 아래 갈피를 잡지 못하는 3월 강물이 충충하다. 시원찮은 볕이 들었다 났다 하는 밤섬을 서(西)에 두고 역청 풀어 놓은 것 같은 물결을 나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내려다보았다. 향방(鄕邦)의 풍토는 모발 같아건드리면 새빨개진다. 갯가에서 짐 푸는 소리가 한가하다. 개흙 묻은 장작더미 곁에서 낮닭이 겨웁고 배들은 다 돛폭을 내렸다. 벌써 내려놓은 빨래 방망이 소리가 얼마 만에야 그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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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 '행복'나의 이야기 2025. 6. 13. 00:01
행복 천상병 나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 시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 ※ 천상병 시인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서 입학할 만큼 총명했던 천상병은 대학 4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시를 쓰겠다고 나섰다.이미 중학시절 등단작을 발표했던 그는, 스스로를 시인의 길로 내맡겼다. 그러나 그의 삶은 우리가 흔히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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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나의 이야기 2025. 6. 12. 00:01
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삼각산( 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漢江)이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종로(鍾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육조(六曺)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러메고는여러분의 행렬( 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일제의 가혹한 침탈에 저항한 이 시는 저항 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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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나의 이야기 2025. 6. 11. 00:01
또 다른 고향 윤동주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백골을 들여다 보며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백골이 우는 것이냐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지조 높은 개는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어둠을 짖는 개는나를 쫓는 것일 게다.가자 가자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백골 몰래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고향상실에서 오는 불안 심리가 절망의 벽을 넘고 있다. 그의 고향(북간도)은이미 일제의 질곡에 묶인 채 신음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의 고향 상실은 죽음과 친숙한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