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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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생애나의 이야기 2022. 12. 5. 00:02
윤동주 시인의 생애 일제 식민통치의 암흑기에 이광수, 최남선 같은 거물급 문인들도 대부분 친일의 길에 들어섰을 때 북간도 명동촌 출신의 나이 젊은 무명시인 윤동주(1917~1945)는 반일 운동을 하다가 일본 후쿠오 형무소에 수감되어 죽어도 굴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옥사했다. 1941년 말, 윤동주가 스무다섯 살 되던 해에 그가 일본 유학 수속을 순조롭게 밟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윤동주네 집에서는 부득이 창 씨를 하여 히라누마(平沼)로 고쳤다. 그 이듬해인 1942년 1월 19일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창 씨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닷새 뒤인1월24일 이 부끄러운 심정을 표현한 시가 바로 이다. 윤동주의 자서 시집 는 지금까지도 이런 민족에 대한 참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참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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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노인이 되지 않는 법나의 이야기 2022. 12. 4. 00:02
저자 소노 아야코 역자 김욱 노인이 되지 않는 법 1. 자립 내가 할 일은 직접 한다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능력이 약해지면 생활을 줄인다 타인의 친절을 기대하지 말고 대가를 지불한다 고령자에게 주어진 권리는 포기하는 편이 낫다 정신의 멋도 옷차림만큼이나 중요하다 자립을 가능케 하려면 생활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건강을 지키려면 자기만의 생활패턴을 지킨다 기대하지 않을 때 뜻밖의 즐거움이 온다 2. 일 죽을 때까지 일하고 놀고 배워야 한다 젊은 사람이 나설 땅을 만들어줘야 한다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갖는다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요리, 청소, 세탁은 반드시 직접 한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되면 행복해진다 3. 관계 서로 ‘절충’할 수 있는 부부가 된다 친한 사이에도 예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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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내용나의 이야기 2022. 12. 3. 00:02
영화 내용 영화는 19세기 프랑스 예술을 대표하는 소설가 에밀 졸라와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의 40년 걸친 위대한 우정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프랑스 시골 마을 엑상프로방스의 중학교에서 화가를 꿈꾸는 세잔과 글을 쓰려는 졸라는 열두 살 에서 만난 둘도 없는 친구이다. 성장한 그들은 19세기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다. 폴과 에밀은 서로의 재능을 칭찬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지만 어느 때는 서로에게 날카로운 비판도 한다. 세잔과 졸라는 당대 미술계와 문학계에 새로움을 가져다준 예술가들이다. 등을 출간하여 명성을 쌓는 에밀 졸라와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에도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괴팍한 폴 세잔, 서로의 예술을 지지하고 사랑했지만 졸라의 문학적 성공과 당대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세잔의 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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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영감적 직감에 의해서나의 이야기 2022. 12. 2. 00:02
시는 영감적 직감에 의해서 김길순 "모래알 한 알에 우주를 생각하고, 손바닥을 젖히면서 영원을 생각한다." 고 피력한 윌리엄 블레이크(1757~ 1828) 는 모래알이라는 무한소를 보는 순간에 우주라고 하는 공간적 무한대를 떠올리고 , 손바닥을 젖히면서 영원을 생각한다고 하였다. 시간적 무한소에서 영원이라고 하는 시간적 무한대를 연상하는 것은 영감적 직감 이라 하겠다. 또한 프랑스의 볼테르(1694~ 1778) 는 "시란 영혼의 음악이다." 라고 하였다. '영혼의 음악'이라는 말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시는 영감에 의하여 쓰이는 성질을 지닌다. 러시아의 작가 투르게네프(1818~1883)는 "시는 신의 말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시는 영감의 작용에 의해서 쓰여져야 한다고 본다.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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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론을 읽고나의 이야기 2022. 12. 1. 00:02
차이콥스키 발레 론을 읽고 발레는 차이콥스키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 발레의 발원지는 프랑스이지만 현대인들이 누구나 러시아를 연상한다. 이유는 차이콥스키는 풍부한 선율과 색채감 있는 다양한 리 듬의 관현악법으로 극과 춤을 결합하여 발레의 독창적 장르로서 수준 높은 예술성을 인정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차이콥스키의 첫 작품 는 1877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될 당시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을 의 성공 후 알아본 프티파는 모스코바에 총보를 요청하여 면밀한 검토 후 우수성과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고 차이콥스키 추도 공연에 본 작품을 상연하고자 제안한다. 1895년 3월 마침내 전막이 무대에 올랐다. 새롭게 태어난 는 훗날까지 발레리나 하면 백조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엄청난 호평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