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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사랑의 습관나의 이야기 2024. 3. 4. 16:20
사랑의 습관
심강우
사랑은 울었다. 사랑이 달랬다. 사랑이 울음을 그쳤다. 그러나 사랑이 보이지 않으면 사랑은 또 울었다. 사랑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왔다. 사랑의 사랑스런 손길에 사랑은 비로소 환하게 웃었다. 사랑이 사랑에게 이럴 거면 합치자고 했다. 사랑은 좋아서 사랑의 목을 껴안았다. 한몸이 된 사랑은 웃음과 울음을 함께했다. 슬픔에 겨운 사랑이 고뇌할 때 기쁨에 벅찬 사랑이 환호할 때 사랑은 한쪽이 출렁거리거나 반대쪽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비 오는 밤이나 멀리서 종소리 사운거리다 갈 때 사랑은 사랑에 들키지 않고 울 수가 없었다. 하물며 웃을 수도 없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뒤섞이고 엉켰으므로 티눈과 우주만큼이나 사랑은 분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친 사랑이 침묵할 때 그 사랑의 등에 기댄 사랑이 노래를 불렀다. 지나간 사랑을, 다시 올 수 없는 그리운 순간들을. 사랑의 진실이 스며든 사랑이 노래를 따라부르자 비로소 사랑의 몸이 분리되었다. 이제 사랑은 혼자서 마음놓고 운다. 다른 사랑마저 운다면 달래줄 사랑이 없다는 걸 안다. 사랑은 혼자 있을 때 사랑의 의미를 알 나이가 되었다. 멀리서 사랑이 아파할 때 사랑의 심장 박동 소리는 가장 크다. 사랑이 웃어도 그게 온전한 웃음이 아니란 걸 아는 사랑은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사랑과 놀다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사랑 속에 무덤을 썼기에 남은 사랑은 혼자서 웃거나 울어도 외롭지 않다. 남은 사랑마저 세상을 떠나고 어느 날 사랑은 눈이 되어 내린다. 가장 맑고 선연한 빛으로 다시 한몸이 된 눈이 소복이 쌓인다. 첫눈, 환한 웃음으로 혹은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눈을 뭉쳐 던지는 저 행위는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아는 사랑이다. 알아서 해 보는 투정이다. 오래도록 전해 오는 사랑의 습관이다.
2024 ≪시와반시≫ 봄호
심강우 (시인 · 소설가)
2013년≪수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그외 ≪동아일보 신춘문예≫(동화) ≪경상일보 신춘문예≫(소설) ≪눈높이아동문학상≫(동시) ≪어린이동산≫(중편동화) ≪성호문학상≫(소설)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시) ≪동피랑문학상≫(시)을 수상하였으며 2019년≪문예바다 공모시≫선정, 2023년≪아르코문학창작기금≫(시 부문 발표지원)을 수혜했다.
시집 『색』 소설집 『전망대 혹은 세상의 끝』 『꽁치가 숨쉬는 방』 『우리가 우리를 버리는 방식』(근간) 동시집 『쉿!』 『마녀를 공부하는 시간』 동화집 『꿈꾸는 의자』 장편동화 『시간의 숲』[출처] 마경덕 카페 작성자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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