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미줄은 김길순 여름날 새벽 이슬해치고 산길을 가노라면 햇빛과 푸른 이파리들이 교차하는 시점에 거미줄을 쳐 놓았다. 거미줄은 미로 같고 그물망 같은 길이다. 그 길은 거미만이 다닐 수 있다. 어찌하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들 그 길을 빠져 나오지 못한다. 용케도 자기가 닦아놓은 길..
가방의 고마움 김길순 요즘은 반짝반짝한 핸드백은 집에 두고 웬만한 자리를 제외하고는 주로 등산용 같은 가방을 등에 메고 다닌다. 내용물은 간단한 필기도구와 햇빛 가리게 양산등이다. 아가를 업듯 바랑을 메듯 오다가다 사고 싶은 물건도 사서 채우고 논아주는 즐거움에 먹는것 무..
접시꽃 김길순 접시꽃을 보면은 네 마음도 진분홍으로 물든다. 송이송이 꽃봉오리 맺고 날마다 피고지고 여인의 다산 산모처럼 부지런도 하구나 시골 담장 밑을 버리고 도시의 복잡한 하늘을 이고서도 잘도 피는 구나 짧은 여름날이 지나 갈까봐 부지런히 피어내는구나 접시꽃
매미 소리 김길순 여름 잘 가란 인사하는 매미소리 오늘 초복인데 벌써 서둘러 울기 시작하네. 무엇을 먹고 저리도 강한 울음소리 몇 마리가 울기 시작 하는가. 매미들의 합창이 시작되면 확성기 소리도 저리가라 하고 울어 제끼지. 여름하면 숲 그늘이 좋고 매미 울음소리를 빼놓을 수는..
베개와 꿀잠 김길순 어릴 때 막내인 나는 어머니의 팔베개를 베고 세 살 위인 언니는 등 너머에서 어머니의 안개로 피어나는 사랑의 베개를 베고 잤다. 사춘기가 지나고 사물을 생각할 즈음 뒤척이며 단잠을 자지 못하자 베개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솜을 넣은 넓적한 베개를 구겨서 높여..
나팔꽃 김길순 철조망이든 나무 기둥이든 어디든 올라가기 좋아하는 나팔꽃팔꽃 꽃잎은 하늘하늘 연약하면서 타고 올라가는 줄기는 힘줄 같이 강인하네. 여름날 아침이면 꽃 분홍 미소 지으며 뱅뱅 어지러운 세상사 하늘을 이고서 아침 미소 주는 나팔꽃 가족들.
가로등 불빛 김길순 외진 곳에서 어둠을 밝혀주는 가로등 연인과 정담을 나눌 때도 둘을 지켜보며 따사롭게 비춰주네. 가까운이 없이 혼자 벤치에 앉았노라면 내 안에 갇혀 있는 많은 말들 감성의 잔뿌리들까지 뿌연 불빛으로 온기를 전하려 하네. 추적추적 비오는 밤에도 외진 곳에서 ..
인내심 김길순 오며 가며 듣던 임플란트 치아 나도 하게되었네 한동안 속을 썩혔던 어금니 하나였는데 뽑아내고 그자리에 임플란트 기둥을 심어줘야 한다기에 치과 의사님 말을 듣기로 했네. 물위를 건널 수 있는 다리와 같은 역할 잇몸에도 금속받침대를 심어주네. 아픔을 참고 틀니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