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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나무 김길순 푸른 잎과 열매를 맺고 많은 세상 버티며 살아 왔는데 세월만큼 삭아내려 껍데기만 남게 되었네. 시멘트를 발라 몸을 부축하면서도 봄이 되면 안간힘 다해 푸른 새싹 틔우지. 뚫린 구멍 속에 들어가 새들과 다람쥐도 쉬어가게 만드는 넉넉한 마음씨 늙어도 한줌의 그늘..
가을에는 김길순 가을 하늘에는 흰구름 뭉게구름이 흘러야 제 모습이다. 숲은 가을바람을 만나면 나뭇잎 부딪치는 소릴 내며 한들거린다. 사람은 만나서 자기를 내 세우면 화근이 될 수도 있다. 가을에는 메모지 한 장 들고 사색에 잠겨 길을 걸어보면 그림자에 비치는 내면의 자기를 만..
고추를 다듬으며 김길순 호미로 가꾼 터전에서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나눠줄 수 있는 결실이 농부의 손을 거쳐 상인의 손에서 나에게로 들어왔다. 파란고추에서 빨갛게 익을 때까지 타들어간 농심의 마음 애간장 녹인 무게를 더한 고추에서 농심의 마음을 읽는다. 하나하나 손질할 때 올 ..
조기찌개 김길순 영광에서 왔다는 조기가 하얀 파도를 밀어내고 있다. 무 넣고 부글부글 끓을 때 흰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매콤한 찌개 국물이 먼 바다 한 자락 끌어 올리고 있다.
가을바람 부는 꽃길에서 김길순 한들한들 웃는 코스모스 얼굴 무엇이 저보다 부드러우랴 온몸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속에 왼종일 한들한들 바람부는 이 꽃길에서 웃지 않는 날 없구나 바람이 지날 때 마다 행복하다고 한들한들 불을 지르는 가을 햇살도 꽃을 탐하는 가을바람을 막지 못..
오빠 김길순 비단구두 사 오신다든 오빠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 오누이 관계를 남남 사이에 붙여 말하는 요즘 애인도 오빠 남편도 오빠 흔하게 부르는 소리를 듣지만 진정 불러보고 싶은 육친의 오빠는 먼 길 갔네. 오빠! 가을이 되니 더욱 보고 싶고 그리워지네요.
정열의 샐비어 김길순 가슴 빨갛게 태우면서 노을이 물드는 산기슭에서 피네. 찌르레기는 찌르레기끼리 울며 계절의 끝자락 잡아 흔드네. 내 가슴에 정열의 불꽃 되살리기 위해 저렇게 불 지피는 사랑 덩어리 정열의 샐비어에 취하게 하네.
내리는 비 김길순 가을 부슬비에 옷도 젖고 입술도 촉촉이 젖는다. 나뭇잎에 하얀 진주알 방울방울 줄지어 또르르 구른다 길을 걸어도 말벗이 되어 똑똑 떨어지며 쓸쓸함 달래주는 비 깊은 밤 되도록 창밖에서 쪼르륵 얘기하다 이윽고 새벽에 어디론지 사라져 가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