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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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바다와 나비나의 이야기 2024. 7. 31. 13:07
바다와 나비 김기림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이 시는 1939년 지 4권4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한 마리의 흰나비가 깊고 푸른 바다를 청무우 밭으로 착각하고 내려갔다가 지쳐서 돌아 오는데, 나비의 허리에 초승달이 비치어 차게 느껴진다는 표현을 여러갈래로 상상할 수있도록 모호하게 처리하고 있다.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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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지붕나의 이야기 2024. 7. 27. 00:01
지붕 마경덕 창을 넘어오는 빗소리, 어둠에 숨은 밤비를 소리로 읽는다. 지붕 아래 누워 밤새 빗소리에 젖는 일은 단잠과 바꿔도 참 좋은 일 모과나무 첫 태에 맺힌 시퍼런 모과 한 알, 서툰 어미가 두 손을 움켜쥐는 밤. 빗물에 고개가 무거운 옥상의 풋대추도 노랗게 물든 살구도 자다 깨어 빗물에 얼굴을 닦고 있을 것이다. 내일이면 뿌리째 뽑힌 텃밭 달개비도 기운 차려 보랏빛 꽃을 내밀겠다. 첩의 입술 같은 붉은 능소화는 길바닥에 속엣말을 흥건히 쏟아놓겠다. 투둑투둑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혀 비의 발목이 부러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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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지리산 시나의 이야기 2024. 7. 25. 00:01
지리산 시 -달 문효치화개재 위에 솟은 달은혼자 보기로 했다.초로에 내 가슴을아직도 충분히 울렁거리게 하는예쁜 여인 배시시 웃는 모습이어서근일이도 남일이도텐트 속으로 등 밀어 보내고숲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혼자만 가만히 안아보았다. ***********※문효치의 지리산이다. 시는, 모든 예술작품은 상상력의 소산이다.이 시에서도 역시 시에 있어서 상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지리산 자락에 솟아 있는 달을 보고 어느 여인으로 연상하여, 그 여인과 달을 동일 선상에 두고 동일시한다. 그리고 그,여인을 안아보듯이 아무도 몰래 달을 안아본다는 착상은 주제를 위한 상상력의 수련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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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바위나의 이야기 2024. 7. 24. 00:01
바위 유 치 환내 죽으면 한개 바위가 되리라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억년(億年) 비정의 함묵(緘默)에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흐르는 구름머언 원뢰(遠雷)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두쪽으로 깨뜨려져도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유치환 시인의 이 시(바위)는 허무를 향한 불굴의 의지를 노래함으로써 허무의 극복 의지를 확연히 보여준 작품이다.인생의 희로애락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자아의 구원을 완성하겠다는 처절한 의지의 시작품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어떤 감정도 개입할 수 없는 바위의 침묵, 그것은 말 이상의 말이요, 글 이상의 글이다. 고도로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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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막도장나의 이야기 2024. 7. 23. 00:01
막도장 김우진 길 건너 도장집 김씨, 평생 나무를 찍어 넘긴 옹이진 손이 목도장을 파고 있다 조각칼 끝에 밀려나는 나무의 속살, 노인은 십분 만에 나무 한 그루를 파 헤쳤다 백년을 써 먹어도 끄떡없을 물푸레나무 도장, 둥근 방 한 칸이 이름 석자를 품었다 모음과 자음이 서로 부둥켜안았다 물푸레나무로 도끼자루를 만들던 아버지도 막도장처럼 살다 가셨다 닥치는 대로 살아온 내 발자국 같은, 서랍 속에 막 굴러다니는 막도장, 나는 막도장을 가볍게 보고 집 한 채를 거덜낼 뻔 했다 처남은 함부로 도장을 찍어 가장골 무논 엿 마지기를 말아먹었다 나는 오늘 전세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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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여승나의 이야기 2024. 7. 22. 00:01
여승 백석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여인은 나이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머리오리: 머리 올, 머리카락의 가닥※백석시인의 이 시(여승)1연은 여승의 현재 상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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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무서운 나이나의 이야기 2024. 7. 21. 00:01
무서운 나이 이재무천둥 번개가 무서웠던 시절이 있다큰 죄 짓지 않고도 장마철에는내 몸에 번개 꽂혀 올까봐쇠붙이란 쇠붙이 멀찌감치 감추고몸 웅크려 떨던 시절이 있었다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어느새 한 아이의 아비가 된 나는천둥 번개가 무섭지 않다큰 죄 주렁주렁 달고 다녀도쇠붙이 노상 몸에 달고 다녀도그까짓 것 이제 두렵지 않다천둥 번개가 괜시리 두려웠던행복한 시절이 내게 있었다****************************************************이재무충남 부여 출생.. 1983년 《삶의 문학》으로 등단.시집 『섣달그믐』『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벌초』『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