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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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8월의 시나의 이야기 2024. 8. 8. 00:01
8월의 시 / 오세영 8월은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오는 것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8월은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가을 산을 생각하는달이다.1942년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출생하였다. 1965년 《현대문학》에 〈새벽〉이, 1966년 〈꽃 외〉가 추천되고, 1968년 〈잠깨는 추상〉이 추천 완료되면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반란하는 빛》,《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무명 연시》,《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상, 녹원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만해대상(1) 등을 수상하였으며, 서울대 교수를 역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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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별 헤는 밤나의 이야기 2024. 8. 7. 00:01
별 헤는 밤 윤동주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헤일듯 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들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풍,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비들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별이 아슬이 멀듯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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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콩나의 이야기 2024. 8. 6. 00:01
콩 문정희풀벌레나 차라리 씀바귀라도 될 일이다일 년 가야 기침 한번 없는 무심한 밭두렁에몸을 얽히어새끼들만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부끄러운 낮보다는 밤을 틈타서손을 뻗쳐 저 하늘의 꿈을 감다가접근해 오는 가을만 칭칭 감았다이 몽매한 죄순결의 비린내를 가시게 하고마른 몸으로 귀가하여도리깨질을 맞는다도리깨도 그냥은 때릴 수 없어허공 한 번 돌다 와 후려 때린다마당에는 야무진 가을 아이들이 딩군다흙을 다스리는 여자가 딩군다**************************문정희 전남 보성 출생.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시집 『문정희 시집』 『작가의 사랑』 등 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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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과 대형마트나의 이야기 2024. 8. 5. 00:01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김길순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는 왼쪽으로 5분 거리에 홈플러서가 있고 오른쪽 5분 거리에는전통 재래시장이 있다. 5일 장날이 아니어도 재래시장은 매일 붐빈다. 헬스 아침운동을 마치고 서틀버스를 타고 정오쯤 귀가하려면 바로 재래시장 앞에서 내린다. 정겨운 사람들이 오가는시장길을 거닐면서 단출한 두 식구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사게 된다.생선가게에선 "큰새우 서른마리에 만원이요."라고 확성기로 외치고 또 한쪽에선 "참외가 만원에 일곱개"라고 외친다. 요즘 재래시장 주인을 보면 대개 젊은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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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눈물나의 이야기 2024. 8. 4. 00:01
눈물 최문자 어릴 적 외할머니가 이불 빨래하는 날은뒷마당에서 잿물을 내렸다금이 간 헌 시루 밑에서 뚝뚝 떨어진재의 신음소리꼭 독한 년 눈물이네열 아홉에 혼자된 외할머니 독한 잿물에덮고 자던 유년의 얼룩들은 한없이 환해지면서뒷마당 가득 흰 빨래로 펄럭였다하나님은 내가 재가 되기를 기다렸다하루종일 재가 되고 났는데도아직 남아 있는 뭐가 있을까? 하여쇠꼬챙이로 뒤적거리며 나를 파보고 있었을 때재도 눈물을 흘렸다어제의 재에다새로 재가 될 오늘까지 얹고독한 잿물을 흘렸다조금도 적시기 싫었던 사랑까지한없이 하얘져서세상 뒷마당에 허옇게 널려 있다재는 가끔 꿈틀거렸다독한 눈물을 닦기 위하여※최문자 시인의 시(눈물)이다. 여기에서 '눈물'은 독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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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쓰는 여자들의 방나의 이야기 2024. 8. 3. 03:14
쓰는 여자들의 방 김선향어머니집에 오니 거실은 물론이고안방까지 난방을 끄셨다.아직 입춘이 지났을 뿐인데어머닌 겨우내 이렇게 지내신 셈인가유일하게 따뜻한 곳은 내가 머무는 방뿐식탁에 노트북을 펼치자손가락이 곱아끙끙거리며 교자상을 방으로 옮긴다시를 얻으려 소설을 낳으려 저마다토지문학관에 연희문학창작촌에 예버덩문학의집에저멀리 땅끝 해남까지도 가고 제주도로 가파도로도 건너가고호텔 프린스도 간다나는 여태껏 그런 델 가보지 못했다그래서 시를 제대로 못 쓰는 셈인가교자상은 뭔가 불편하고냉골에 누워 계신 어머닌 마음에 걸리고고관절염 때문에 콜레트는 침대에 접이식 책상을 올리고장지에는 변기 위에 널빤때기를 올려놓고앨리스 먼로는 세탁실에서 소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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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나의 이야기 2024. 8. 2. 07:02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새로 돋은 정맥(靜脈)이바르르 떤다.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지붕과 굴뚝을 덮는다.3월(三月)에 눈이 오면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밤에 아낙들은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아궁이에 지핀다.※김춘수 시인의 이 시에서는 "샤갈의 마음'과 '눈'이 밀접한 상관과계를 가지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이 두 사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일체를 이루기 때문이다.특히 샤갈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같은 작품은 무척 쉬르레알리슴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두 사물의 합치점은 이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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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세월이 가면나의 이야기 2024. 8. 1. 12:30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 저 유리창 밖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네. 사랑은 가고과거는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나뭇잎에 덮여서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어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 시인의 이 시(세월이 가면)에서는 논리적인 모순이 없다.또 논리적인 모순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만큼 이 시는 기교적이 아닌 것처럼 순박하게 보인다. 논리적인 언어로 질서 정연하게 잡혀 있으면서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