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
(시) 여승나의 이야기 2024. 7. 22. 00:01
여승 백석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여인은 나이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머리오리: 머리 올, 머리카락의 가닥※백석시인의 이 시(여승)1연은 여승의 현재 상태를 ..
-
(시) 무서운 나이나의 이야기 2024. 7. 21. 00:01
무서운 나이 이재무천둥 번개가 무서웠던 시절이 있다큰 죄 짓지 않고도 장마철에는내 몸에 번개 꽂혀 올까봐쇠붙이란 쇠붙이 멀찌감치 감추고몸 웅크려 떨던 시절이 있었다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어느새 한 아이의 아비가 된 나는천둥 번개가 무섭지 않다큰 죄 주렁주렁 달고 다녀도쇠붙이 노상 몸에 달고 다녀도그까짓 것 이제 두렵지 않다천둥 번개가 괜시리 두려웠던행복한 시절이 내게 있었다****************************************************이재무충남 부여 출생.. 1983년 《삶의 문학》으로 등단.시집 『섣달그믐』『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벌초』『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등
-
(시) 공동우물나의 이야기 2024. 7. 20. 00:01
공동우물 김용택동네 가운데 허드레 샘 있었습니다.아무리 가물어도 물 마르지 않았습니다.세수도 하고, 걸레도 빨고 미나리꽝과 텃논 물도 대고, 동네 불나면그 샘물로 불도 껐습니다.그 샘 중심으로 위 곁, 아래 곁 편 나누어줄다리기도하고, 짚으로 만든 공 차고, 씨름하고, 자치기했습니다.공동으로 쓰다 보니, 늘 물 나가는 도랑이 막혀실지렁이들이 사는 해치가 물길을 막았습니다.현철네 할머니, 막힌 도랑 치우며급살을 맞을 연놈들, 어질러놓기만 하지누구 하나 치우는 연놈들 없당게,아니나 치우면 되지, 손목댕이가 부러지나 어디가 덧나나,양 소매 걷어붙이고 맨손으로 후적후적 막힌 도랑 다 치웠습니다.그러다가 미꾸라지 나오면한 마리..
-
(시) 석탄나의 이야기 2024. 7. 18. 00:01
석탄 정공채1어쩌다 우리 인생(人生)들처럼 바닷가에 쌓여 있다.부두(埠頭)는 검은 무덤을 묘지(墓地)처럼 이루고그 위로 바람은 흘러가고, 검은 바람이 흘러가고,아래론 바닷물이 악우(惡友)처럼 속삭이고, 검은 물결이 나직이 속삭이고어쩌다 우리 인생(人生)들처럼 바닷가에 쌓여 있다.2억만년(億萬年)의 생성(生成)의 바람소리와천만년(千萬年)의 변성(變成)의 파도소리와하늘을 덮고 땅을 가린 원시림(原始林)의 아우성과화산(火山)과 그때마다 구름같이 우우 달리던 둔한 동물(動物)들이캄캄한 지층(地層)으로 지층으로 흘러온 뒤로용암(熔岩)과 산맥(山脈)의 먼 먼 밑바닥에서귀머거리 되고 눈머거리가 되고, 검은 침묵(沈默)에 죽었노..
-
(시) 가정나의 이야기 2024. 7. 17. 00:01
가정 이상문(門)을 암만 잡아당겨도 안 열리는 것은 안에 생활(生活)이 모자라는 까닭이다.밤이 사나운 꾸지람으로 나를 조른다. 나는 우리 집 내 문패(門牌) 앞에서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나는 방 속에 들어서서 제웅처럼 자꾸만 감(減)해 간다. 식구(食口)야 봉(封)한 창호(窓戶) 어디라도한구석 터놓았다고 내가 수입(收入) 되어 들어가야하지 않나. 지붕에 서리가 내리고 뾰족한 데는 침(鍼)처럼 월광(月光)이 묻었다. 우리 집이 앓나보다 그러고 누가 힘에 겨운 도장을 찍나보다.수명(壽命)을 헐어서 전당(典當) 잡히나 보다. 나는 ..
-
(시) 눈물나의 이야기 2024. 7. 15. 00:01
눈물 김현승더러는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 저......흠도 티도금 가지 않은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김현승 시인의 시 이다. 기독교 정신을 기조로 인간 내면의 진실에 쏟은 김현승 시인의 작품이다. 종교적 차원은 이처럼 겸허하면서도 지고지선의 진실성을 바탕으로 절대 가치에의 치열성을 보이게 된다. 이 시는, 1960년대 이후부터 타계할 때까지 기독교적인 바탕 위에 선 인간으로서의 고독의 세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