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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김길순 그윽히 들여다보이는 눈은 물속의 달 같이 슬프다. 그대 달은 슬프다. 호수에 잠긴 달빛 속으로 빠져들고 싶은 나는 한 마리의 노루가 되어 그대 눈을 찾는다.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잠자코 있는 표정 그대 잠은 슬프기만하다. 사슴같이 순하고 여린 그대눈은 하현달 처럼 슬프다...
텃밭 김길순 텃밭에 빨갛게 익은 고추 장맛비에 떨어지지 않고 살아남아 애간장 녹인 주인 속 한 시름 달래 주는 듯 무게를 더해 가네. 후끈한 여름밤 풀벌레 울음소리 밭 고랑에서 찌르르 울어 샀네. 고추밭 골을 따라 애써 가꾼 터전에서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나눠줄 수 있는 결..
빨간 속 수박을 보며 김길순 껍질은 국방색이지만 속은 가슴 태우는 싸루비아 꽃빛깔을 하면서 많은 밀어들을 간직한 채 어둠에서 씨앗을 배었다. 반토막으로 열리는 순간 속이 드러나는 정열의 빨간 불이 켜진다. 여름 뙤약볕에 익어야 한다고 그 한 날을 위하여 오로지 머리에만 영양을 쏟았지. 장..
열무김치 김길순 여린 초록 열무 석단 아삭한 이파리 다듬어 굵은 소금을 뿌리지. 풋고추 듬성듬성 풀물에 띄우면 쌉쌀한 그 맛에 고향 어머니 손맛이 살지. 뚝뚝한 꽁보리밥에 풋고추 붉은 고추 띄운 얼큰한 열무김치 내 가슴에도 푸르게 푸르르게 초록 풀물이 드네.
아름다운 것은 김길순 햇살의 미소와 스치는 바람의 애무 손짓하는 나무와 지저귀는 새는 아름답다. 정다운 사람을 기다리는 이의 그리움도 기다림도 저녁 노을 같이 아름답다. 노을이 흐르는 그리움이 한으로 담겨 떠낸 시의 잔에 넘치는 석류 속 같은 그러한 입술은 아름답다. ..
꽃꽂이 김길순 하나의 꽃 곁에 또 하나의 꽃을, 꽃과 꽃 사이 정답게 꽂으면 햇살을 사모하는 웃음꽃이 된다. 세련된 손놀림으로 줄기를 자르고 고르고 꽂는 움직임에 봉오리 채 웃는다. 꽃 사이로 내려온 햇살 신비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웃음꽃을 마음에 심는다.
용마산 비안개 김길순 용마산 비안개 그 언저리 자욱한 날은 바람소리도 바람소리도 비둘기 구구구 우는 소리도 내려놓지 않고 흐르네. 골짜기 풀섶에 핀 개망초꽃 고향 마을을 보는듯하네. 내 마음 함초롬 물기 머금은 꽃잎 속으로 들어가 유년을 그려보네. 빗방울도 소금쟁이도..
수평선위 노을 김길순 수평선위에 노을이 탄다. 해당화 불이 일어 내 가슴에 루비처럼 다가오는 그리운 사람~ 바다 물결도 반짝이며 발갛게 일렁이네. 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온몸은 해초향취에 물들인 채 강화도 갯벌위에서 타는 해 바라보네. 그리운 사람 뜨거운 가슴처럼 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