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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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 구이나의 이야기 2023. 9. 20. 00:01
전어 구이 김길순 전어 굽는 냄새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다. 과연 며느리가 돌아올 정도로 전어구이가 맛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날부터 가을 전어구이를 좋아한 것은 분명하다. 전어라는 이름 자체가 그 증거다. 정조 때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생선의 종류와 특징을 기록한 《난호어목지》에 물고기 이름의 유래가 적혀 있다. 전어는 고기에 가시가 많지만 육질이 부드러워 씹어 먹기가 좋으며, 기름이 많고 맛이 좋다. 상인들이 소금에 절여서 서울로 가져와 파는데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두 좋아하므로 사는 사람이 값을 생각하지 않고 사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한다. 언제인가 문인 단체에서 내소사 가을 답사를 가는데 들어가는 긴 거리의 입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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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제25회 <수주문학상> 수상작 - 먹갈치나의 이야기 2023. 9. 19. 00:01
2023년 제 25회 <수주문학상> 수상작 - 먹갈치 먹갈치 조수일 야행성이었다 달이 뜬 후에야 낡은 통통배를 밀고 바다로 향했다 대낮엔 모래 틈이나 펄 바닥에 엎드려 밤을 기다리는 갈치를 닮았다 딱 한 번 흙탕물에 발이 빠졌을 뿐인데 당신의 얼룩은 평생을 따라붙었다 어둠이 더 편한 밑바닥의 생 북항의 밤은 늘 멀리서 찬란하였다 날렵한 지느러미에 주눅 든 새끼들을 싣고 밤하늘의 유성을 따라가고 싶을 때도 있었을까 은빛의 유려한 칼춤으로 자신의 바다에서 단 한번도 刀漁가 되어본 적이 없는 아버지 갈라터진 엄마의 울음이 뻘밭에 뿌려지던 날 마지막 실존이었던 銀粉마저 다 털려 유영의 꿈을 접었던 평생 들이켠 바다를 다 게워내느라 갑판 위가 흥건했다 짠물을 다 마시고도 채우지 못한 허기 삶을 지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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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농부의 얼굴에서나의 이야기 2023. 9. 18. 00:01
농부의 얼굴에서 김길순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한국에 왔을 때 "농부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보았다."고 했다. 인접국들로부터 수없이 침략을 당했지만 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나라 선량한 백성들, 전쟁과 고통과 빈곤, 그 만고풍상을 겪어오면서도 선량하게 늙은 농부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본 것이다. 문학 예술이나 신앙은 사랑과 감사함에서 시작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감사함의 시를 썼다. 릴케의 시 을 올린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노래했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라고. 진실로 그러하다. 남국의 햇살에 포도주가 익듯, 대자연의 순리 앞에 겸허한 옷깃을 여미게 될 때에 우리도 곱게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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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압력을 벗어난 밥솥나의 이야기 2023. 9. 17. 00:01
압력을 벗어난 밥솥 심강우 압력을 벗어난 압력밥솥이 수거함에 실렸다 압력은 활개를 편 가지보다 뿌리와 가까운 사이 굳이 바위를 파고든 뿌리를 옮기지 않는 이유이다 밥솥의 추처럼 그의 반생 역시 핑핑 돌았다 얕은 지층에서 그의 뿌리는 뜸을 들일 여유가 없었다 가난은 언제나 그에게 설익은 생각을 재촉했다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건 그였지만 그를 씻어 안치는 건 보이지 않는 시류時流였다 불순한 생각을 조물조물 헹구는 동안 밥솥은 백미와 잡곡을 가리지 않는다 거친 생계를 불리는 시간이 다를 뿐 묵은 습관이든 갓 찧은 가치관이든 밥맛만 좋으면 된다는 원칙주의자이다 한때 그는 급속취사를 선호한 적이 있다 꼬들꼬들해진 감정을 한 줄 말아 출장을 다녔다 보온에서 금방 덜어 낸 감정에 비해 눈치가 무디다는 심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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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커피 속 명언나의 이야기 2023. 9. 16. 00:01
우리가 몰랐던 커피 속 명언을 알아 본다. -T.S. 엘리엇- "나는 내 인생을 커피 스푼으로 측력했다. 1922년 시 〈황무지〉를 발표하여 젊은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194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가 쓴 시 중 “나는 평생 내 삶을 커피 스푼으로 재었네.” 이 있는데, 이는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무기력한 인간, 즉 자기 자신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환상의 세계에도 냉혹한 현실세계에도 적응할 수 없었던 그에게 유일하게 삶의 기표가 되는 것은 커피 스푼으로 삶을 되질하는 것이었기에 이와 같은 시를 남길 수 있었다. - 바흐의 커피 칸타타중 아아! 커피의 기막힌 맛이여 그건 천번의 키스 보다 멋지고, 마스카트의 술보다 달콤하다. 혼례식은 못 올릴망정, 커피만은 끊을 수가 없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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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리나의 이야기 2023. 9. 15. 00:01
개구리 소리 김길순 신혼 시절, 그이가 외국 유학을 떠나자 공허함을 메꾸기 위하여 산사를 찾았다. 주말에 찾은 절은 경북 영천 은혜사였다. 낮에는 매미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밤이면 밤마다 개구리들의 합창이 산천이 떠나가도록 개골개골 걀걀걀 울었다.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불효한 개구리 삼형제 얘기 어머니를 물가에 묻었기에 비만 오면 떠내려갈까 봐 구슬프게 운다는 생각은 꼬리를 물고 개골개골 걀걀걀 브람스곡과 드뷔시곡에 심취해 보아도 소용없던 시절에 개구리 소리는 박자도 맞지 않는 소음이면서도 깊은 밤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위로가 되었다. 왜 그럴까. 개구리가 개골개골 걀걀걀걀 하고 말했어. 자연의 소리가 고요하다면 개구리소리는 고승의 참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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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관객 1나의 이야기 2023. 9. 14. 00:01
관객 1 마경덕 기대했던 연극표는 매진되고 모처럼 주머니에 담아온 오후는 휴지처럼 구겨졌다 쓸모없는 시간 한 토막을 대학로 어딘가에 버려야 했다 골목골목을 지나 외딴 소극장 눅눅한 공기를 밀치고 가파른 계단 끝에 닿으니 흐릿한 불빛 아래 객석은 텅 비었고 무대는 호젓했다 장내를 쓱 훑어보던 키 작은 남자는 검은 커튼 속으로 사라지고 관객은 혼자였다 나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연극은 무사할까 긴 대사와 짙은 분장이 서성거리는 무대 뒤편 무명 배우들의 초조한 눈빛이 떠오르고 왠지 모를 쓸쓸함이 객석을 채우고 있었다 맨정신으로 살 수 없는 이들은 우리의 시간 너머로 넘어가 웅크려 앉았다가, 식어가는 심장을 가동시켜 잠시 이 세상으로 걸어 나오는 것인데, 연극 같은, 연극이 아닌, 이 비극으로 며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