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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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제31회 <공초문학상'>수상작 - 문정희나의 이야기 2023. 9. 12. 00:01
도착 문정희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에 도착했어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 더 많았지만 아무 것도 아니면 어때 지는 것도 괜찮아 지는 법을 알았잖아 슬픈 것도 아름다워 내던지는 것도 그윽해 하늘이 보내 준 순간의 열매들 아무렇게나 매달린 이파리들의 자유 벌레 먹어 땅에 나뒹구는 떫고 이지러진 이대로 눈물나게 좋아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 여기 도착했어 ********************************************************* 문정희 전남 보성 출생.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문정희 시집』 『작가의 사랑』 등 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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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내 마음 속에는나의 이야기 2023. 9. 11. 00:01
내 마음 속에는 김길순(자작 시) 내 마음 속에는 삐비를 뽑던 언덕에서 볼을 붉히던 무지개 빛깔이 있습니다. 가을날 고추잠자리 떼지어 몰려오는 노을빛도 있습니다. 봄이면 참꽃을 따먹던 어린날의 꽃대궐이 있습니다. 청명한 이슬을 털면서 대밭 속을 살포시 날아 다니는 비비새가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는 순수한 이웃들의 고향 냄새가 있습니다. 이제 도심의 창가에서 깨어진 징조각처럼 소리 없이 흩어진 그 소리없는 여운이 언제까지나 울려나오고 있습니다. 뜬 구름같은 세월 아쉬움만 남는다지만, 어린이는 꿈을 먹고 살거니와 노인은 추억을 먹고 산다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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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더린 시나의 이야기 2023. 9. 10. 00:01
운명의 여신에게 휠더린 권능을 지닌 자, 그대들이여, 다만 한 여름과 한 가을을 저의 성숙한 노래를 위해 허락하옵소서, 그리하여 감미로운 유희에 포만하여, 저의 마음이 온유해져서 죽게 하소서! 삶에서 거룩한 권리가 부여되지 못한 영혼은 저 하계의 명부에서도 쉬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느 땐가 나의 마음속에 있는 거룩한 것, 시가 완성되면, 환영하리다, 오, 음영의 세계의 적막이여! 비록 나의 현악이 나를 배웅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만족하리다. 나는 한 번 신들처럼 살았으니 그 이상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으리다. ◇ F.휠더린. 1770년 독일 라우펜에서 출생 1848년 튀빙겐에서 사망. 고향의 향토와 조국에 깊숙이 그 영혼의 뿌리를 내린 시인. , 이 시는 휠더린의 대표작으로 신앙시에 속한다. 한 평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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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어디 하나 버릴게 없는 양파나의 이야기 2023. 9. 9. 00:01
어디 하나 버릴게 없는 양파 김길순(자작 시) 단단하게 여물은 껍질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새로운 껍질이 있는 것처럼 껍질과 알맹이가 같을 수는 없을 까. 양파를 벗기면서 사람도 양파처럼 벗기면 벗길수록 속이 거듭 찰 수는 있을까. 궁리하기를 거듭하게 되었다. 어디 하나 버릴게 없는 껍질이 알맹이가 되고 알맹이가 껍질이 되는 표리가 동일한 인생······ **************************************** ※ 2013년 시인회의 제12시집 에 발표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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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남사당나의 이야기 2023. 9. 8. 00:01
남사당 노천명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램프불을 돋운 포장(布帳) 속에선 내 남성(男聲)이 십분 굴욕된다 산 너머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날이면 떠남을 짖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소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와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 ※ 남사당의 구성원은 패거리를 책임지는 우두머리적인 꼭두쇠가 있고, 꼭두쇠를 보좌하는 부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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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하루살이 처음처럼나의 이야기 2023. 9. 7. 00:01
하루살이 처음처럼 김길순 여름날 산에 오르면 하루만 살다 죽어도 좋다는 하루살이 또 만나게 된다지요. 천 년 세월도 하루같이 짧은 시간 못다 한 말 감추고 그저 그저 뜨겁게 불붙는 대로 천 년을 살듯이 날개 훨훨 펴며 화끈하게 살아요. 봉우리와 골짜기가 영원히 존재하듯 우리 하루살이 천년 살이로 살아요. 우리 사랑도 처음처럼 처음처럼 첫눈에 취하던 사랑처럼 그렇게 하루답게 하루를 살아요. 뭣 모르고 둘러 마신 처음처럼 * 김길순 (발표 한 자작 시) **************************************** ※ 오늘은 제가 건강 검진 받으러 가야겠기에 오전 8시에 나가서 오후에 돌아 와서 들어 오신분의 답방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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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주성(定州城)나의 이야기 2023. 9. 6. 00:01
정주성(定州城) 백석(白石) 산山턱 원두막은 비었나 봄빛이 외롭다 헝겁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던 무너진 성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魂)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커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이 한올 빛같이 환하다 날이 밝으면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려 올 것이다 ***** *아주까리 : 버들옷과의 한해살이 풀 *하올 : 하늘 *청배 : '청술래의 다른 말.푸른 빛이 도는 배의 한가지. ※ 이 글은 퇴락한 전주성을 표현하고 있다. 원두막 불빛이 외롭고,"헝겊 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쏘는 소리"는 호롱의 기름 졸아드는 소리를 말하는데 그런 소리가 들릴 리 만무하므로 고요의 극치를 말한다. 고풍스런 정주성의 고요함을 표현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