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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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주성(定州城)나의 이야기 2023. 9. 6. 00:01
정주성(定州城) 백석(白石) 산山턱 원두막은 비었나 봄빛이 외롭다 헝겁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던 무너진 성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魂)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커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이 한올 빛같이 환하다 날이 밝으면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려 올 것이다 ***** *아주까리 : 버들옷과의 한해살이 풀 *하올 : 하늘 *청배 : '청술래의 다른 말.푸른 빛이 도는 배의 한가지. ※ 이 글은 퇴락한 전주성을 표현하고 있다. 원두막 불빛이 외롭고,"헝겊 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쏘는 소리"는 호롱의 기름 졸아드는 소리를 말하는데 그런 소리가 들릴 리 만무하므로 고요의 극치를 말한다. 고풍스런 정주성의 고요함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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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독의 근육나의 이야기 2023. 9. 5. 00:01
고독의 근육 류근 내게서 한 걸음도 달아나지 못하고 일없이 왔다 가는 밤과 낮이 아프다 며칠씩 눈 내리고 길은 홀연 내 안의 굽은 등성이에서도 그쳐 여기서 바라보면 아무런 뜻도 아닌 열망과 그 너머 자욱한 추억의 첩첩 도끼 자국들 내 안의 저 게으른 중심에 집도 절도 없이 가로누운 뼛조각 환하고 이제 어디로든 흘러가 몸 풀고 싶은 옛사랑 여기 참 어둡고 변방까지 몰린 시간이 오래도록 누워 사는 생각의 지붕들 위에 낮은 키로 쌓인다 눈 맞은 나무들이 고스란히 제 생애의 무게를 향해 손을 내밀 때 어디로도 향하지 못한 존재의 저, 광활한 배후 *** 류근 경북 문경 출생.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 『상처적 체질』 『어떻게든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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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시名詩 이상 시인을 알아본다나의 이야기 2023. 9. 4. 00:01
한국의 명시名詩 이상 시인을 알아본다 우리나라에서 초현실주의 시인을 찾자면 이상시인을 꼽는다. 그는 1935년대 전후에 세계적으로 유행된 자의식 문학 시대에 있어, 시와 소설을 통해서 대표적인 자의식 작가이며 초현실주의의 시인으로 알려졌 기 때문이다 이상 시인의 시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현실주의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초현실이란, 현실의 초월도 , 현실의 초월을한 피안의세계나 .이상세계가 아니라 현실을 부정하고 그 부정을 매개로하여 새로 운 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의 시 작품 오감도, 가정,아침, 거울, 이 발표된 이번 가을호 문학사계를 통해 더 자세히 알고 한편을 골라 올린다 - 작성 김길순- 거울 / 이상 거울속에는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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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백두산 천지 물나의 이야기 2023. 9. 3. 00:01
백두산 천지 물 엄한정 저기 하루 자고 여기 사흘 묵어서 백두산 천지에 오른다 어둠이 걷히면 비도 그치리 기다림 끝에 장백폭포에 무지개가 선명하다 얼마나 별서 온 것이냐 마침내 백두산 천지 앞에 선다. 광활하다 좋은 울음 터에 한바탕 울만하다. 수십 년 등짐을 내려놓은 듯 궁궐 문을 열어젖히듯 가슴을 편다 승사하를 따라 펼쳐진 초원을 아이처럼 뒹굴며 울다가 바라보면 구름이 흘러가는 저기 국경을 달리하는 천지를 건너는 배는 없고 다만 내 조선의 근원을 천지에서 본다 이 물이 길어 병에 채워 간다 우리의 우물 맛이다 * 문학사계 87호 가을호에 실린 작품 ******************************************** --엄한정 1936년 인천 출생 *1963년 아동문학(박목월 추천)지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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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배낭이 커야 해나의 이야기 2023. 9. 2. 00:01
배낭이 커야 해 박형권 집 나올 때는 배낭이 커야 합니다 집을 가지고 다녀야 하니까요 아무 데서나 자려면 돗자리는 있어야 하니까요 지붕은 필요 없어요 별을 세다가 자야 하니까요 새벽을 위해서는 배낭이 커야 합니다 반짝 열리는 인력시장에서 뭔가 단단히 준비하고 온 걸 보여야 하거든요 고달픈 인생은 우리 사이에서 계급장이지요 흔해빠진 연애사건 하나와 술자리에서 펼칠 무용담 몇 가지 여유 있게 담으려면 배낭이 커야 합니다 오늘은 양평에서 고추 따는 일이 걸렸어요 일 끝내고 가져갈 만큼 가져가라는 인심을 담으려면 욕심껏 배낭이 커야 합니다 상품 안 되는 것 공원에서 팔면 피로 만든 선지국밥 한 그릇은 남길 수 있어요 아, 나는 그 선혈을 담기 위해 큰 배낭을 짊어졌습니다 벌써 환갑이 코끝에 닿은 나이 내 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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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멸치나의 이야기 2023. 9. 1. 00:01
멸치 조은설 저 푸르른 바닷속 삶도 들여다보면 녹록치 않아 세상 어디에서도 적용되는 생존의 법칙 앞에 멸치는 너무 작고 생은 짧아 그래, 뼈대를 키웠다 뼈대 있는 멸치가 되었다 물결이 금빛으로 빛나는 것은 멸치의 꿈이 물이랑 사이사이 반짝이기 때문 어마어마한 멸치 떼의 군무 앞에 고래도 가끔 오금이 저린다 덩치가 크고 힘을 가졌어도 약한 것들이 뭉쳐 산을 이룬다면 우당탕 돌파의 문은 열리기 마련 팔뚝에 불끈 근육을 세운 어부가 촘촘한 그물로 바다를 낚을 때는 절대 물샐틈없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도 은빛의 빛나는 기억들을 굳히며 뼈대 있는 가문의 후예답게 멸치는 죽음조차 의연하고 단단하다 작은 몸으로 바다를 제압하던 멸치의 군무 고래를 떨게 하던 멸치들의 힘 사람들이 밥상 위의 멸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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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8월의 시나의 이야기 2023. 8. 31. 00:01
8월의 시 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 오세영(吳世榮, 1942년 5월 2일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출생하였다. 1965《현대문학》에 〈새벽〉이, 1966년 〈꽃 외〉가 추천되고, 1968년 〈잠깨는 추상〉이 추천 완료되면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반란하는 빛》,《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무명 연시》,《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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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시인의 사명나의 이야기 2023. 8. 30. 00:01
시인의 사명 류근조 시인(詩人)= 시인이란 원래 보는 것 본업이라 또 본다는 것은 정의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이는 곧 감시하는 언어의 파수군으로 통하는 것 하지만 평화로운 시대에는 시가 하나의 장식에 불과할 수도 아니 국가나 민족이 비운에 처해 있울 땐 민족혼을 불러일 으키는 구국의 기수이어야 허거늘 이 땅의 수많은 시인들여! 나를 비롯해 과연 그대들도 여기에 혈맥을 같이하고 있는지 스스로에 물어보고 아니, 진정한 시인의 사명을다함께 되새겨 보자! ******************************** ※ 월간문학 8월호에 게재된 시 - 류근조 / 중앙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