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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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번개탄나의 이야기 2023. 7. 11. 00:01
번개탄 마경덕 십 년 시집살이 연탄의 숨구멍을 조이는 일이 내 목을 조이는 것 같아 이 방 저 방 느슨히 불구멍을 열어놓으면 시어머니 불호령이 발등에 떨어졌네 연탄을 아끼는 일은 만만한 며느리 몫이어서 새벽잠을 설치며 아궁이를 살폈는데 누군가 숨구멍을 단단히 틀어막아 까맣게 죽어버리던 연탄불 그때 불씨가 되어주던 번개탄 불붙인 신문지를 갖다 대면 번개처럼 확 일어나 질식한 연탄을 거뜬히 살려냈지 부랴부랴 새벽밥의 숨구멍을 트고 그때마다 매운 번개탄이 눈물나게 고마웠지 그렇게 일손을 돕던 번개탄이 이제는 일산화탄소 중독을 일으키는 주범이라네 보건복지부 자살예방 대책안에 ‘번개탄 생산금지’가 들어있네 그동안 번개탄으로 숨진 사람은 1763명 해가 갈수록 번개탄 자살 사망은 늘어만 간다네 죽은 연탄을 살리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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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 받게 해요나의 이야기 2023. 7. 10. 00:01
당신은 사랑받게 해요 김길순 사람은 이성의 상대로부터 "당신은 사랑받게 해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만일 연인과 즐기려고 탁구를 친다면 잘 못 들어온 공을 치기 좋은 자리에 보내 주어서 공을 잘 살려 내게 하는 사람은 사랑 받게 하는 사람이다. 사랑의 기술보다 진실한 사랑이 소중하다. 왜냐하면 화장(기술)보다 소중한 것은 건강(진실)이기 때문이다. 병든 자나 주검에 화장이 필요없듯이 거짓에는 사랑이 있을 수 없다 향기 있는 꽃에는 벌나비가 날아들 듯 사랑은 생명의 꽃이라고 전한다. "당신은 사랑받게 해요"란 말을 들으려면 진실한 사랑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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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궁여지책나의 이야기 2023. 7. 9. 00:01
궁여지책 길상호 개다래라는 열매가 있는데요 이름도 못생긴 것이 꽃도 보잘 것 없이 작아 산 속 깊이 밀려나 사는 넝쿨나무가 있는데요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놈도 열매는 맺아야 하니까 나비의 입술이 필요했던 겁니다 은둔에 익숙해진 꽃으로는 얼굴 내밀 수 없어 궁여지책 잎들 하얗게 탈색시켰던 것인데요 잎을 꽃으로 바꾸기까지 제 속을 얼마나 끓였겠습니까 그 열매 날로 씹으면 혓바닥이 훨훨 탄다는데요 불기를 어르고 달래야 그제서 오장육부 따듯하게 덥히는 약재가 된다는데요 불을 약으로 만들기까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떨었겠습니까 ************** 길상호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등,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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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바다나의 이야기 2023. 7. 8. 00:01
수필은 바다 김종상(아동문학가)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한다. 붓 가는 대로는 물이 흘러가듯이란 말과 같은 뜻이다. 흐르는 물의 특성은 옹고집을 버리고 그릇 모양에 따르며, 자신을 더럽히면서 남의 때를 씻어준다는 점이다. 또 막히면 돌아가고 거미줄에도 부서지지만 방죽도 무너뜨리지만 오수도 약수도 하나로 받아 뭉치며, 낮은 곳으로만 흘러 강이 되고 바다를 이룬다는 점 등이다. 수필은 이러한 글이다. **************************************************************** ※ 윤재천 엮음. 김 종 그림 에서 ( p88~89 ) 에 실린 글과 그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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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그날엔나의 이야기 2023. 7. 7. 00:01
그날엔 이병률 갖고 싶은 것 다 가지고 사는 사람 있는가 내 어머니의 연탄구멍 같은 교훈이 석유난로 위에서 김을 낸다 오랜만에 숭늉이 끓는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딸을 두고 일찍 재가하셨고 세상에서 유명한 구멍 속으로 발을 들여놓으셨다 구멍만을 디디고 이 길까지 오신 어머니는 온통 세상이 혼자뿐인 것 같아 자식 스물을 꿈꾸셨지만 결국은 구멍에다 나를 빠뜨리셨다 한 길 가는 생명이 바람이 내어준 길을 따라 코를 열고 바빠할 때 난 듣는다 또 숭늉 끓이는 소리와 탄식은 탄식을 낳는다는 소리를 어머니는 살아 계시지만 그 말을 어머니의 살아 계시는 유언이라 믿는다 세상의 문이 고쳐져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기까지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살지 못한다 나는 영영 태어나지 않을 부자가 되어 무섭게 떠돈다 땅이 사람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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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호박꽃과 호박죽나의 이야기 2023. 7. 6. 00:01
호박꽃과 호박죽 김길순 호박꽃도 꽃이냐는 말은 있지만 호박죽도 죽이냐는 말은 없다. 호박꽃은 천대하면서도 호박죽은 대접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건 사물이건 잘 생기거나 맛이라도 있어야 대접을 받는다. 요즘 입맛을 잃었는데 갑자기 호박죽이 먹고 싶어졌다. 어릴 때 길들여진 음식이라 먹고 싶었으리라. 늙은 호박과 단호박을 함께 삶아 믹셔기에 갈았다. 물에 불린 찰쌀과 삶은 팥을 넣어 끓을 때 까지 저었다. 늙은 호박을 탐탁찮게 여겼는데, 죽을 쑤니 꿀맛이다. 꽃이나 사람이나 저 하기 나름이다. ***** ※ 김길순 : 경주 저서:제1시집 단추, 제2 시집 피아노와 도마소리 공저 : 한국명시선7(어느 간이역의 겨울밤), 등 수상 : 중랑구 문화예술인상(2006년), 다산문학산, 세종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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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나의 이야기 2023. 7. 5. 00:01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장석주 희망은 절망이 깊어 더 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을 때 온다. 연체료가 붙어서 날아드는 체납이자 독촉장처럼 절망은 물빠진 뻘밭 위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감은 눈 앞에 환히 떠오르는 현실의 확실성으로 온다. 절망은 어둑한 방에서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고 서랍을 열어 서랍 속의 잡동사니를 뒤집어 털어내듯이 한없이 비운 머릿속으로 다시 잘 알 수 없는 아버지와 두 사람의 냉냉한 침묵과 옛날의 病에 대한 희미한 기억처럼 희미하고 불투명하게 와서 빈 머릿속에 불을 켠다. 실업의 아버지가 지키는 썰렁한 소매가게 빈약한 물건들을 건방지게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는 백열전구처럼. 핏줄을 열어, 피를 쏟고 빈 핏줄에 도는 박하향처럼 환한 현기증으로, 환멸로, 굶은 저녁 밥냄새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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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골판지 박스나의 이야기 2023. 7. 4. 00:01
골판지 박스 이삼현 깨지기 쉬운 육 남매를 품은 택배 박스 입을 앙다문 듯 양 날개를 접어 단단히 봉인되었다 밤늦게 택배기사 부축을 받고 도착한 엄마 여기저기 찍히고 부딪쳤지만 품 안의 자식들 발가락 하나 빠져나가지 않게 움켜잡고 있다 물어물어 달려왔을 천 리 길 과적돼 실려 오는 동안 함부로 내던져져 틈새에 끼었어도 묵묵히 견뎌냈을 한생이 아무렇지도 않다며 웃어 보인다 박스를 개봉하려다 말고 잠시 멈칫하는 것은 모서리마다 꼼꼼히 바른 테이프 자국 성한 곳 하나 없는 몸에 끈적끈적한 파스를 붙였기 때문이다 가다가 혹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아들네 주소와 이름만은 놓치지 않으려 꼭 쥐고 있다 배달이 끝나면 텅 비워져 버려질 엄마 알면서도 한사코 감싸 품어주었던 골판지 박스 제 안으로 잔뼈를 세웠지만 구멍이 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