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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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커튼 너머나의 이야기 2024. 3. 25. 16:01
커튼 너머 김시림 한밤중 시어머니의 얼굴을 아프게 바라보는 병실 옆 침상, 속삭이는 소리가 숨소리까지 데리고 커튼을 넘어왔다 남자가 손수레를 끌 듯 이끌어 나가면 그 뒤를 밀 듯 간간이 뒤따르는 여자의 목소리 이제 막 발아한 사랑처럼 다정하고 조심스럽고 애틋한… 간이침대에서 선잠 자고 난 아침, 반년째 누워있는 아내를 지극정성 간호하는 남자를 보았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바깥을 통째로 말아 병실에 구겨 넣은 채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별의 경계선에서 겨우 돌아왔다는 60대 초반의 부부 소변주머니 비우는 일도 기쁨이라는 남편은 아내의 궤도를 따라 도는 하나의 위성이었다 *********** 김시림 시인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1년 《한국문학예술》, 2019년 《불교문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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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리랑을 알아본다.나의 이야기 2024. 3. 24. 16:01
정선 아리랑을 알아본다 김길순 작성 정선아리랑의 역사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강원도 정선 지역에서 전래하는 향토민요 「아라리」의 고유 명사이다. 정선군은 1968년에 『정선아리랑가사집』을 냈고, 1970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정선아리랑이 민요(民謠)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1971년 정선에서 전래한 아라리가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고, 이와 관련한 3명의 기능 보유자(技能保有者)도 지정되었다. 이와 함께 ‘정선아리랑’이라는 명칭이 공식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선아리랑의 내용 아라리는 강원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동부 지역 산간 지대에서 불린다. 노래판에서 혼자 또는 여럿이 어울려 부르기도 하고, 밭을 매거나, 나무하고, 나물을 뜯으며 노래하기도 하였다. 남녀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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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봄은 간다나의 이야기 2024. 3. 23. 16:01
봄은 간다 / 김억 봄이도다 봄이도다. 봄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 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 * 1910년 태서문예신보 1918,11 발표된 시 * 한국 현대문학은 1910년 대는 개화기의 자양분을 토대로 현대적인 시가가 탄생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학우, 창조, 등의 잡지가 생겨나 현대적 자유시의 탄생에 직접적인 토대를 제공해 주는 시기였다. 1910년 태서문예신보 1918,11 발표된 일제의 강점기에 발표된 이 시는 현대적 자유시의 형식에 아주 근접하게 다가온 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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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리 나지 않는 글나의 이야기 2024. 3. 22. 16:01
소리 나지 않는 글 추프랑카 아름다운 국어책을 무척 사랑했지만 2학년이 되도록 글을 읽지 못했다 교실 뒤에서 무릎 꿇고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창문을 닦고 변소 청소를 했다 소리 나지 않는 나의 글 언니들은 큰소리로 나, 너, 우리…… 교과서를 읽고 또 읽었다 어머니, 아버지…… 날마다 아버지를 먹었다 허수는 먹고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허수를 먹고 허수 속에 웅크린 낱말, 아버지 선생님은 내게 읽기를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모든 낱말들이 아버지란 발음에 잡 아먹히는 줄 까맣게 몰랐던 나의 선생님 엄마는 무논 벼 베기를 미루고 숯다리미에 숯불을 담아 한복을 다려 입고 떡 한 시루를 쪄 교무실로 이고 왔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은 나는 착하신 선생님과 착하신 엄마를 하루 종일 입 안에 넣고 굴렸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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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는 봄 外 2편나의 이야기 2024. 3. 21. 16:01
가는 봄 이승훈 가는 봄 말이 없고 그대 또한 말이 없네 붓 가는 대로 쓰고 싶지만 아직도 내가 모자라 붓을 들고 망설이네 창밖에 뚝뚝 떨어지는 꽃잎은 피인가 잉크인가 꽃 지면 여름이다 한마디 중얼거리고 아무렇게나 쓴다. 사르비아 이승훈 그대 다녀간 길이 내가 다녀간 길 하염없이 사르비아 핀다 사르비아 사이에 해아 뜨고 내가 서 있다 여기가 전생이다 사루비아핀다. 사랑 이승훈 비로소 웃을 수 있고 한가롭게 거리를 걸을 수 있고 비가 와도 비가 와도 비 를 맞을 수 있고 서점에 들려도 마음 이 가벼울 수 있고 책들이 한없이 맑 아지는 걸 볼 수 있게 된 건 투명한 책 들 앞에 두렵지 않게 된 건 모두 어제 네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말했기 때문 이야 네가 있는 곳! 따뜻한 곳! 그곳 으로 오라고!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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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가슴에 안고나의 이야기 2024. 3. 20. 16:01
꽃다발 가슴에 안고 김길순 아무리 세상이 살기가 어려워도, 아무리 심신이 힘들더라도,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은 헛소리가 아닌 것 같다. 천국이 따로 없다. 3월은 시냇가 얼음 위로 우쭐우쭐 올라온 꽃도 있고, 남도 지방에서는 매화꽃부터 꽃이 피며, 새 풀옷을 입으시고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시고 한가락 뽑고 싶은 노산 이은상 시 봄 처녀 노래가 실감나는 계절이다. 자연은 아름답다. 꽃들은 꾸미지 않고 원색 그대로 빨강 노랑 하양 이렇게 나타내어 봄은 어린 병아리 같은 연초록이지만 사오월이 되면 진초록 신록이 찬란하게 치장한다. 가늘게 내리던 세우, 봄비가 멋고 햇살이 퍼지니 산야의 신록이 생기를 얻은 자태로 눈 앞에 다가 온다. 두 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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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인생은 짤고 예술은 길다나의 이야기 2024. 3. 19. 16:01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김길순 이 세상 만물들이 어느 하나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봄바람도 꽃바람도 영원한 것은 없다. 고산 윤선도의 중에서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 이라고 만물의 무상함과 그 순행을 노래한 것 같다. 권세가 강해도 십 년을 누리지 못하고 꽃이 피면 시들고 푸르름도 곧 변하게 되므로 만물의 순행법칙을 보고 고산 윤선도는 인생의 덧없음으로 노래 하였다. *** 조선조 시조시인의 1인자로 알려진 고산 윤선도는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시가사상 쌍벽을 이룰만큰 조선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섬세하고 예술적으로 구사한 점이 가장 큰 공적으로 남는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십년 세도 없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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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저녁노을나의 이야기 2024. 3. 18. 16:01
저녁노을 김철 나이가 구상 시인 즈음 되니 저녁노을이 저녁노을 같지 않다. 언제나 황홀했던 그 붉은 빛깔이 문득 만장같이 보이기도 하고 함부로 다가가서는 안 될 분화구의 입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어차피 한 번은 들어가야 할 불잉걸 속의 세상 같기도 하고 처절한 인생의 절규가 피처럼 번져 있는 영사막 같기도 하고 그것을 바라보다 나는 눈을 감는다. 울긋불긋 단풍 든 저 하늘 건너편에 숨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또 하나의 나를 찾아 먼길하기 위하여. ※ 한국문학인 2024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 -작성 김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