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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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보면나의 이야기 2024. 3. 17. 16:01
얼굴을 보면 김길순 여자나 남자가 나이 60이 넘고 70대가 넘으면 외모만 보아도 대충 그 사람의 인격을 가늠하게 된다. 헬스클럽에 갔더니 어떤 아저씨는 머리를 단정히 하고 러닝머신을 땀이 날 때까지 달리다가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분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면서 그분의 위상을 올려주려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집이 아주 가까운 10분 거리에 있는 데에도 고급승용차를 몰고 오는 심리는 무엇일까하고 비꼬는 이도 있었다. 링컨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는데 요즘은 성형이 대세라서 주름을 없애며 살지만, 나이 80이 넘으면 원래의 그 사람의 인품이나 살아온 내력이 얼굴에 여실히 나타나는 것 같다. 온갖 사연이 담긴 얼굴들이 나이 들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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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구두 뒤축에 대한 단상나의 이야기 2024. 3. 16. 16:01
구두 뒤축에 대한 단상 복효근 겉보기엔 멀쩡한데 발이 빠져나간 구두의 뒤축이 한쪽으로 심하게 닳았다 보이지 않은 경사가 있다 보이는 몸이 그럴진대는 헤아릴 수도 없을 마음의 경사여 구두 뒤축도 없는 마음의 기울기는 무엇이 보정(補正)해주나 또 뒷모습만 들켜주는 그 경사를 누가 보아주나 마지막 구두를 벗었을 때 생애의 기울기를 볼 수는 있을 것인가 수평을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되어버릴 생이여, 비애여 닳은 구두 뒤축 덕분에 나는 지금 멀쩡하게 보일 뿐이다 ※ 복효근 남원 출생. 199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외 다수 -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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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죄책감나의 이야기 2024. 3. 15. 16:01
죄책감 최문자 남편 3주기 기일 나는 오늘 오래오래 노를 저어야한다 슬픔은 끈적끈적하고 사방으로 멀고 단단하다 사과를 깎고 있을 때 내가 욕조에 물을 틀고 있을 때 그는 나를 용서했을까 물을 잠그고 손을 말리고 노트북을 꺼내 어디를 펼쳐 봐도 용서 받을 수 없겠지 용서처럼 달달한 휴식은 없는데 죄책감이 후회를 스쳐 지나갈 때 서로 뚫지 않고 왜 서로 은밀하게 스미나 용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몇 번이나 집을 걸어 나갔다 저수지 옆길을 돌아 발자국이 끝나면 이렇게 걸어서 곧 용서 받을 수 있을까 하고 더 오래 걸었다 집으로 오는 길 그는 언제나 용서할 듯한 얼굴로 물새처럼 바다로 가고 노을 아래서 나는 허공을 젓고 있다 죄책감은 모래 언덕 그칠 줄 모르고 푹푹 빠지는 다음 생애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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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 <고야>일부를 올린다.나의 이야기 2024. 3. 14. 16:01
고야 / 백석(일부)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 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 서 나는 밤소 팥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 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섣달에 냅일날이 들어서 냅일날 밤에 눈이 오면 이 밤엔 쌔하얀 눈귀 신도 냅일눈을 받노라 못 난다는 말을 든든히 여기며 엄매와 나는 앙 궁 위에 떡돌 위에 곱새담 위에 함지에 버치며 대푼을 놓고 치성이 나 드리듯이 정한 마음으로 냅일눈 약눈을 받는다 이 눈세기물을 냅일물 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여가며 고뿔이 와 도 배앓이를 해도 갑피기를 앓어도 먹을 물이다. 시 일부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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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훈련나의 이야기 2024. 3. 12. 16:01
훈련 박남수 팬티 끈이 늘어나 입을 수가 없다. 불편하다. 내 손으로 끈을 갈 재간이 없다. 제 딸더러도 끈을 갈아 달라기가 거북하다. 불편하다. 이제까지 불편을 도맡았던 아내가 죽었다. 아내는 요 몇 해 동안, 나더러 설거지도 하라 하고, 집 앞 길을 쓸라고도 하였다. 말하자면 미리 연습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가시게 그러는 줄만 여기고 있었다. 빨래를 하고는 나더러 짜 달라고 하였다. 꽃에 물을 주고, 나중에는 반찬도 만들어 보고 국도 끓여 보라고 했다. 그러나 반찬도 국도 만들어 보지는 못하였다. 아내는 벌써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팬티 끈이 늘어나 불편할 것도 불편하면서도 끙끙대고 있을 남편의 고충도 (시집 『그리고 그 이후』, 1993) ※ 그러한 아내의 ‘훈련’에 대해 그간 성가시다며 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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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 세계를 본다나의 이야기 2024. 3. 11. 16:01
허수경 시 세계를 본다 / 작성 김길순 허수경 (1964년~2018)은 1987년(실천문학)에 작품을 발표하여 작품을 시작한 이후 1987년 첫 시집를 출간하고, 1992년 두 번째 시집 출간한 후 독일로갔다. 독일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선사고고학을 공부하고, 뮌스터대학에서 고대동방문헌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독일에 정착하여 시작과 저술 활동을 지속했다. 2001, 2005, 2011, 2016, 등의 시집을 출간하였고, 소설, 동화, 수필집 등을 출간하여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다가 2018년 작고 했다. 시인의 두 편의 시를 올리고자 한다. 글로벌 블루스 / 허수경 울릉도산 취나물 북해산 조갯살 중국산 들기름 타이산 피쉬소스 알프스에서 온 소금 스페인산 마늘 이태리산 쌀 가스는 러시아에서 오고 취나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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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 그리고 달 外 1편나의 이야기 2024. 3. 10. 16:01
해 그리고 달 안 혜초 해는 달을 품어서 동트는 아침을 만들 수 있고 달은 해를 품어서 어두운 밤을 환히 밝힐 수 있네 ********************* 새해 첫 편지 안혜초 몸이 조금 아프다고 쉬이 주저앉지 말기 일이 잘 풀린다고 마냥 좋아하지 말며 되는 일이 별로 없다 하여 자주 울적해 말기 지금 이 순간에도 숨이 넘어가는 목숨이 있고 새로 태어나는 생명이 있을지니 이만큼이나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린 얼마나 행복한가 우린 얼마나 감사한가 오늘도 후회 없는 하루이기를 사랑과 공의가 승리하는 한 해이기를 첫새벽, 정화수 한 사발 되어 간절히 그도 드린다 나라걱정으로 무거워진 나날 속에서 가정과 이웃과 겨레와 지구촌의 평안을 위해 ※PEN(국제펜한국본부)2024년 1.2월호에 발표된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