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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끔은 연필을 깎고 싶을 때가 있다나의 이야기 2024. 3. 7. 16:01
가끔은 연필을 깎고 싶을 때가 있다 황정희 연필을 깎는다 사각이며 깎여 나가는 소리가 한 사람이 멀리서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 같다 저문 안부가 보낼 때마다 하루를 긁적이게 하는 노을의 붉은 빛처럼 수북해져 연필이 깎여 나갈수록 내 생활의 변명처럼 흩어진 나를 그러모아 쓴다 백지 위에 수많은 말풍선들 두더지게임 하듯 여기저기 불쑥불쑥 튀어 오르다 사라지는 말들 꽃피고 계절 지는 동안 사람피고 인연 지는 동안 언제부턴가 허리를 굽힌 시간을 바로 눕히고 절름발이 그리움도 그리움이라고 칼끝에 닿는 연필심에 맥박이 뛴다 안부는 묻는 것이 아니라 먼저 들려주는 거라고 쓴다 ※ 2023년 신춘문예 당선시집에서 황정희 시인 경북 영주 출생 2020년 월간문학 신인상 제1회 경북여성문학상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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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정신의 공기와 햇빛나의 이야기 2024. 3. 6. 16:01
시는 정신의 공기와 햇빛 김길순 시는 정신의 공기와 햇빛이라는 말은 문학사계 봄호 머리말에 있는 말이다. 그런데 시인과 소설가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왜 어깨를 나란히 할까. 시는 삶의 질을 높이고, 소설 은 인생을 풍부히 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욕설이 필요하면 써도 되지만, 시는 욕설이 허용되지도 성립되지도 않는다. 돈이 최고라고 돈만 아는 돈의 노예가 되면서 부터는 편하고 즐겁게 사는 대세다. 돈의 신을 섬기는 동안에 시의 정신을 잃었다. 시는 정신의 공기요 햇빛이다. 이 말이 와 닿았다. 시인이 개체목적을 위해서 살게 될 때 나와 남의 차별이 없어지고 하나의 생명과 사랑으로 통 하게 된다. 그럴 때 그의 시는 정신의 공기가 되고 햇빛이 된다. 여기서 -에밀리 디킨슨의 시 을 올린다. 내가 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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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서시(西施)의 젖빛나의 이야기 2024. 3. 5. 16:01
월간문학 2024년3월호 첫말미에 천창2 글 한편 올리고 나중 시조 다섯편 중 한편 더 올립니다. 천창(天窓) / 윤금초 내 사는 도심 바깥 그 6층 옥탑방엔 달빛도 세 들어 사는 옹색한 서재가 있다. 썼다가 도로 지우는 글밭 가는 비상구 있다. 옛 선비 길러냈다는 사가독서(賜暇讀書)는 언감생심 베갯머리 포개둔 책 손때 절은 갈피도 있다. 서시(西施)의 젖빛 윤금초 복사꽃 건듯 이울고 물살 가른다. 황복거사. 죽음과도 바꿀만한, 죽을 작정 하지 않곤 입맛 다시지 못할 검복 가시복 흰점복···.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유별난 식감 주는 복어회는 후르르 혀가 절로 말리고 만다. 밀복 졸복 참복 황복 한 마리 독(毒)빼는데 서 말 석 되 물을 쏟는다. 골부림 지나친 녀석, 원래 성질 잘 내는 탓에 진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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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사랑의 습관나의 이야기 2024. 3. 4. 16:20
사랑의 습관 심강우 사랑은 울었다. 사랑이 달랬다. 사랑이 울음을 그쳤다. 그러나 사랑이 보이지 않으면 사랑은 또 울었다. 사랑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왔다. 사랑의 사랑스런 손길에 사랑은 비로소 환하게 웃었다. 사랑이 사랑에게 이럴 거면 합치자고 했다. 사랑은 좋아서 사랑의 목을 껴안았다. 한몸이 된 사랑은 웃음과 울음을 함께했다. 슬픔에 겨운 사랑이 고뇌할 때 기쁨에 벅찬 사랑이 환호할 때 사랑은 한쪽이 출렁거리거나 반대쪽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비 오는 밤이나 멀리서 종소리 사운거리다 갈 때 사랑은 사랑에 들키지 않고 울 수가 없었다. 하물며 웃을 수도 없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뒤섞이고 엉켰으므로 티눈과 우주만큼이나 사랑은 분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친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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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베짱이나의 이야기 2024. 3. 3. 16:01
베짱이 이신강 바쁜 개미는 외로움을 모른다. 악사 베짱이는 울기도 잘하고 뒤돌아보며 기도한다. 맑은 하늘 가 떠가는 구름도 보고 삶과 죽음을 헤아리며 가는 다리, 야윈 어깨에 알맞은 바이올린을 켠다. 빈 곡간을 슬퍼하지도 않고 궁전을 탐하지도 않는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싸늘한 바람이 불면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인다. * 2024년 문학사계 봄호 89호 실린 글 ※ 이신강 시인 약력 1943년 오사카출생. 원적 충남공주.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 1985년2회 추천. 선사문학상. 숙명문학상. 한국현대시인상 외 다수.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시문학회 지도위원. 강동예총 부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한통문협 이사. 숙문회 간사장 역임. 가톨릭 문우회. 국제펜 한국회원 및 이사. 강동문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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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세계나의 이야기 2024. 3. 2. 16:01
김소월 시세계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잘 영합하는 시인으로 소월을 꼽을 수 있다. 우리 민족의 미적 감수성의 다른 표현, 예컨대 '은근과 끈기'라든가 '선의 예술'과 같은 개념도 그 심층적인 의미 구조 속에 한과 깊은 관련이 있다. * 한(恨)이라는 어휘는 오직 우리 국어만의 소유물이다. 의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의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등의 시행은 반동형성으로서의 진술이다. 우리가 소월의 시를 통해서 교훈적 양식으로 삼아야할 점은 우리의 고유한 정통성에 대한 문제다. 그는 우리의 순수한 향토정서를 민요적 가락으로 노래했다. 현대시가 어떻게 변모하거나 우리가 제자리를 찾아야할 지점은 소월의 시세계라 하곘다. 진달래꽃 김소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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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미학나의 이야기 2024. 3. 1. 16:00
부끄러움의 미학 / 작성 김길순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게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 암울한 시대적 절망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려 했던 숭고한 의지가 형상화되어 있어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조여들게 하는 윤동주의 이다. 한 세상을 살면서 하늘을 우러러 티끌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잎새에 이는 가는 바람에도 혹시 그 마음 흔들리지 않을까, 내면 깊숙이 괴로워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오늘을 슬기롭게 잘 산다고 믿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한다. 암울한 시대적 절망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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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노정기나의 이야기 2024. 2. 29. 16:01
노정기 / 이육사 목숨이란 마치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마음이 구죽죽한 어촌보담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를 밀항하는 짱크와 같아 소금에 절고 조수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를 벗어나면 태풍과 싸워가고 전설에 읽어 본 산호도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이 비쳐주도 않았다 쫒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처럼 발목을 오여 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이냐 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먼 항구의 노정에 흘러간 생활을 들여다보며 * 포범: 베로 만든 돛 짱크: 특수한 작은 모양의작은 배 오여: 외어. 쓰기 불편하게 꼬여 ※ 이육사의 시는 조국의 상실이라는 극한적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