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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 꽃물 들여 주시던 어머니 김길순 세월이 가도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서 언제나 고향의 뜰로 손짓하는 그 고운 꽃잎들 손톱에 빨간 꽃물 들여 반달이 될 때까지 보고 또 보던 그 해 여름 꽃물 들여 주시던 젊은 어머니 나를 보고 웃으시던 저녁. 그 길었던 여름이 짧게만 지..
멀리 있어도 절절한 것이 사랑이다 김길순 온 종일 쳐다보고 있지 않아도 사랑이다. 멀리 전파를 타고 귓전에 안부 말만 물어 와도 그 안부만으로도 사랑이다. 잠이 안 오는 쓸쓸함, 내 동공 속에 허상이 그려지는 것도 뜨거운 가슴만으로도 곧 사랑이다. 봄비 타고 오는 가랑비 속..
굿바이 사랑 다시 찾다 / 김길순 A씨는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는 모더니티 남편 그 조용한 분위기 매력에 빠져 부인 B씨는 A씨와 결혼을 했다지. 즐겨하는 일이라곤 글쓰기와 그림그리기 휴식에는 담배 피우는 일 제발제발 말려도 두문불출 되자 살림은 점차 말아먹는 삶이되고 부인은 밖으로 나..
아름다운 향기 / 김길순 아름 우리는 살아가면서 비단 꽃들에만 향기가 나는 것은 아니다. 사회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헌신 봉사한 사람은 향기가 난다. 좋은 글에선 향기가 나고 좋지 않은 글에선 향수냄새가 난다. 마음이 사악한 사람은 향기가 없기에 모든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난다. 우리는 향수..
살구나무와 폐가 /김길순 고목이 된 살구나무와 폐가가 마주보고 친구 되어 서 있네. 앙상한 가지에 돋아나는 연분홍 새순 올해도 어김없이 살구꽃을 피웠네. 살구나무 가지는 폐가의 창문을 기웃거리며 인사를 하네 산을 오르는 무리들의 마음에도 살며시 화사한 살구꽃 그림자 한 자락씩 어깨에 걸..
목화씨 화분에 심어놓고 출장 김길순 목화씨 몇 알 화분에 심어놓고 외국으로 출장 간 남편 아침 베란다 문을 여니 포르스럼한 새싹이 올라왔네. 그 새잎을 보니 남편의 얼굴이 떠오르고 유난히도 고전을 좋아하고 우리의 것을 좋아하는 남편, 목화 꽃이 하얗게 피어 있는 들녘이 보고 싶어 베란다 좁..
꿈을 퍼 올리는 두레박 / 김길순 유년시절 두레박으로 샘물 푸던 꿈을 꾸었네. 감꽃이 떨어지는 계절 풀벌레도 울어 샀고 어머니 밭일 갔다 늦게 오실 때엔 큰언니 샘물 길러 저녁밥 지었 다네. 세월이 오래 지난 지금 꿈 속에서 향수를 퍼 올리고 있었네. 옛 꿈이 지금의 내 삶이였을까. 지금도 삶의 두..
접시꽃 일생 / 김길순 풀들이 무성한 길섶에서 아파트 좁은 공간에서 꽃이 핀다 해도 처소를 탓하지 않는다. 달덩이 같은 아들 딸 잘도 낳아 기르던 조선의 어머니 같이 꽃망울 주렁주렁 여름 비바람에도 꼿꼿이 보듬고 서서 꽃답게 피어내는 접시꽃 여자의 일생처럼 저리도 바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