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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난로가 추위를 김길순 신내동 산자락에 사는 친구 집, 며칠 비워둔 사이 물이 꽁꽁 얼어 보일러가 터졌다고 한다. 긴급 구입한 장작난로 땔감으론 지난여름 곰파스 태풍 때 생 뿌리채 쓰러진 나무 가지가 주가 되고 불 쏘시개는 솔가리 대신 지난 여름 말려 두었던 고춧대 줄거리를 ..
장미의 향기만 찾다보면 김길순 루즈의 동그라미를 그리며 장미의 봉오리 입술로 다가온다. 분홍으로 백장미로 흑장미로 향기를 뿜어내며 연인을 부른다. 찔릴지 알면서 다가가면 가시 세례만 받고 상처를 입고 돌아오게 됨을. 햇살을 사모하며 가시 없는 보드라운 몸짓으로 부르는 꽃을 찾아야 한다..
너 없인 하루도 못살것 같았네 -김치를 꺼내며 김길순 그 풋풋하고 아삭아삭한 텃밭에서의 푸른 꿈은 내어주고 무서리 내리자 김치냉장고에서 지낸 세월을 본다. 상큼한 맛으로 살아나 도마를 거쳐 식탁에 놓여 만날 수 있으니 이 또한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타국에 나가보라 두고 온 애인만큼..
소라껍데기를 모으는 여자 김길순 나는 가끔 소라껍데기를 모은다. 바닷가에 가면 어쩌다 대접만한 소라를 만날 때가 있다. 벌써 속은 갈매기가 파먹고 껍데기만 남아 빈 하늘만 보고 있는 소라껍데기를, 구멍 뚫어 창가에 매달아 물을 담으면 옥잠화를 띄우고 흙을 담으면 늘어지는 실 난을 키운다. ..
그리움 띄워 보낼 수 있는 다정한 우체국 김길순 우체국에 가면 직원들도 꽃 편지도 소포 상자도 모두가 그리움이란 표를 달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설레인다. 아! 뭔가 행복에 찬 편지를 써서 보낼 것 같고 애타게 그리운 님 에게 구구절절 밤새워 적은 사연도 있을 것 같아서이다. 나는 멀리 바다건너..
흰눈 오는 날 우리 사랑 키웠었지 김길순 그 때 청춘 때 흰 눈이 사락사락 오더니 나중엔 펄펄 어깨를 덮으면서 마음을 포개어 주었었지. 하얀 눈 돌돌 굴리면서 동심의 눈사람 만들어 우리의 꿈 뭉쳐나갔었지. 하얀 눈이불 펼쳐지면 마음을 서로 포개면서 눈을 뭉치며 뭉쳐서 굴리면서 영원을 약속하..
짜깁기하러 성형외과로 가요 김길순 원래처럼 되진 않지만 일그러진 얼굴을 짜깁기하러 성형외과로 간다는 어느 화상 입은 젊은 환자의 눈물겨운 절규를 친구가 전해 줬다. 손발이 멀쩡해 맛있는 요리도 남편의 뒷바라지도 할 수 있었지만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 아이가 커 가는데 더는 보일 수 ..
매서운 바람 몰아친 오늘 면목시장 김길순 야채가게 남원상회 방풍 문을 비닐로 설치했네. 뿌옇게 주인도 채소도 그림자만 보이네. 따뜻해서 마음 놓이지만 모두가 지나 가 버리네. 얼어서 버리나 썩어서 버리나 같은 것을 배달 오토바이 한쪽에서 한나절 서있네. 찐빵 집은 김이 모락모락 문전성시 ..